「타이페이」365일 <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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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자유중국 사람들과 토론을 하다보면 이들의 뇌리에 손문의 삼민주의사상이 뿌리깊게 박혀 있음을 보게 된다.
토론이 점차 열기를 띠게 되면 그들은 곧잘 『국부(손문)께서 말씀하신 내용중에…』 하는 식으로 논리의 정당성을 『국부사상』(삼민주의)에서 찾고 있다는 것을 자주 느끼게 된다.
각급학교의 입시에 삼민주의는 필수과목이며 여러대학에 삼민주의대학원이 설치돼있다.
올8월 한국을 통해 자유중국으로 귀순한 손천근전중공조정사가 공산당을 탈당, 국민당입당을 선언한것도 손문의 초상화 앞에서였다. 또 자유중국 참모총장이 손씨에게 선물한것이 『삼민주의』책이라고 대북의 유력일간지가 1면머리로 제목을 뽑기도 했다.
경제정책도 예외일수없다. 손문선생은 『민생은 바로 정치의 중심이며 경제의 중심이다. 아울러 여러가지 역사활동의 중심으로서 마치 우주안의 중심과도 같다』고 민생주의를 강조했다.
계문선생은 민생주의의 두가지 방책으로 지권평등과 자본절제등을 제시했다.
오늘날 대만경제의 장점들로 꼽히는 ▲농업과 공업의 균형적발전 ▲중소기업의 발달 ▲소득격차의 축소 ▲높은 저축률 ▲훌륭한 교육제도및 복지후생수준등도 근원을 따지고 보면 바로 이사상과 책략의 결과라는 느낌이 든다.
경제건설위원회 한국경제담당 오가흥씨(36)는 『지권평등에 따른 성공적인 농지개혁은 「농업으로 공업을 배양하고, 공업으로 농업을 발전시킨다」는 목표에 접근하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말한다.
성공적인 농지개혁은 농민들을 중산층으로 끌어올리는 역할을 했으며, 국내저축에 의한 투자재원마련이라는 모범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한국이 「외자의존형」으로 줄달음친 결과 결코 경시할수없는 규모의 외가를 짊어진것과 대조를 이룬다.
물론 대만의 높은 저축률은 그들의 근면·검소한 민족성이나 안정된 물가상승률, 당국의 면밀하고도 탄력적인 금리조작등에도 원인이 있다.
대북에서 발간되는 신문들을 읽다보면 『어느 집에 불이 났는데 침대밑 트렁크안에 감춰두었던 현금도 몽땅 타버렸다』든가, 『독신거지가 병사, 장례를 치르려고 집안을 정리하다보니 수천만원(한화)이 예금된 저금통장 발견됐다』는등의 기사를 볼수 있다.
또 대북시의 백화점들이나 웬만한 거리에서는 구두수리점을 흔히 볼수 있으며 「슈룩」이라는 구두수리점은 대북시에만 7개의 점포를 가진 체인이다.
점잖은 신사 숙녀들이 거리의 수리점에 구두를 맡겨놓고 슬리퍼를 신은채 신문을 읽는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은채 바로 대북의 거리풍경이다.
또 일류호텔 식당에서도 이빠진 그릇이나 수저등을 외국인에게 거리낌없이 내미는 것도, 획수가 한글보다 많은 한자를 쓰면서도 보통 3백자원고지를 사용하는 것도 바로 중국인이다.
대만에는 한국적의미의 재벌이 거의 없다.
물론 큰부자가 있긴 하지만 한국의 재벌같은 것은 찾아보기 힘들다.
83년8월 미국의 경제잡지 포천지가 선정한 세계5백대기업에 한국은 9개사(8개사민영)가 들어있는데 비해 대만은 겨우 2개사가 턱걸이를 하고있으며 그중 하나는 국영이다.
한 개인에게 자본을 집중시키지 않으며, 국민에게 큰영향을 주는 산업이나 기간산업은 국가가 운영해야한다는 「자본절제」가 잘지켜지고 있는 탓이다.
대만에서 중소기업이 비교적 갈 발전된것은 바로 이 자본절제라는 정책과 「용꼬리보다는 닭머리를 하겠다」는 국민성이 작용한 탓이라고 황예봉화교산물보험공사부장은 설명한다.
그러나 지권평등과 자본절제가 모두 긍정적인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석제평경제건설위 전문위원은 『농촌에서는 지권평등이 성공했으나 도시지역에는 문제가 있다』고 했다.
또 농지소유한도 규제는 농업의 기계화를 막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산업정책의 문제 또한 자본절제에서 비롯되고 있다.
국제시장에서의 경쟁이 자본과 설비의 대형화에따른 원가절감이라는 「규모의 경제」라는 면에서 「자본절제」는 진통을 겪고 있다.
최근 조요동경제부장(장관)은 『우리의 경제체제는 자본주의도 공산주의도 아닌 민생주의』라면서도 『자본은 클수록 좋다』라고 말하고 있다.
대만에는 자동자회사가 6사나 있으나 국내시장에 안주, 시설확장이나 기술개발등을 소홀히 했다.
자유중국정부는 안일한 경영자세에 자극을 주기위해 생산규모 30만대수준의 합작자동차공장을 8년 계획으로 짓기로했다. 미화 약5억4천만달러가 소요되는 이공장의 투자비율은 일본도요따가 45%, 자유중국 55%. 그런데 자유중국의 지분은 국영회사인 중국강철이 25%로 제일 많고, 나머지 30%는 몇개 민간기업에 나눠 주었는데 최고가 8%다.
「자본절제」라는 원칙에는 충실하지만 경영효율면에서는 문제의 소지가 없지않다고 보여진다. 설탕·소금·술·담배에서부터 철강·조선까지 국가가 경영하고 있으나 국영기업의 경영상태가 부실해 비판이 거세다.
민생주의는 오늘의 대만경제를 이끌어왔지만 국영기업의 부실, 규모의 경제라는 시련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다. <박병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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