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켜보고 평가해 달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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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3호 06면

새해 벽두부터 낙하산 인사 논란으로 문화계에 파문을 던진 한예진(44) 국립오페라단 신임 예술감독이 공식석상에 처음 나섰다. 지난달 2일 임명 직후 기자간담회를 예정했지만, 두 차례 연기 끝에 취임 한 달을 맞은 지난 3일 비로소 업무파악이 끝났다며 기자들을 불러 향후 3년간의 경영비전을 제시했다.

한예진 신임 국립오페라단 예술감독

한 신임 예술감독은 직접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하며 의욕적으로 ‘일꾼’ 이미지를 어필했다. 국립오페라단 혁신의 키워드가 ‘국민행복증진’과 ‘오페라를 통한 국격 신장’이라며 “국가 이미지 상승과 고품격 문화한류를 꼭 이뤄내겠다”고 다짐했다. 세계 10대 오페라극장 벤치마킹, 미술·패션·음식·무용 등 문화예술분야를 총망라한 융복합 공연을 통한 저변 확대와 ‘관광 콘텐츠 1호’ 육성이 그 추진전략이다.

구체적인 운영방향도 제시했다. 교류공연과 공연횟수 확대다.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역의 특화 콘텐트와 연계해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겠다는 독특한 발상과 6월 인도네시아 초청공연 등 추진 중인 해외교류 계획도 공개했다. 현재 연간 20여 회에 불과한 공연 횟수도 대폭 늘이겠다고 했다. 또 한국적 스토리의 창작오페라를 넘어선 현대 오페라를 만들어 세계를 아우르고, 탕평적 캐스팅으로 인재를 발굴할 것이며, 기업지원 확충과 영리더스클럽 신설 등 후원 활성화, ‘보는 오페라’를 넘어 ‘즐기는 오페라 문화’를 정착시키겠다는 포부까지 밝혔다.

그러나 그의 청사진에 기자들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오페라계 인사들이 비대위를 꾸려 줄기차게 사퇴를 요구하고 문체부 제출 이력서에 경력을 부풀렸다며 검찰에 고발하는 등 자격 미달 논란이 진행중이기 때문이다. 국립오페라단의 위상과 단장의 자질 여부에 대한 공세가 끈질기게 이어졌다.

한 예술감독은 밀라노 베르디 국립음악원을 졸업한뒤 유럽·일본에서 활동했다. 메라노 국제콩쿠르 음악평론상 심사위원장 특별상, 코모 국제콩쿠르 우승, 베스트 보이스 푸치니아상 수상, 각종 시간강사 활동과 2014년 상명대 산학협력단 특임교수 재직이 이력의 전부다. 스스로도 세계적인 소프라노는 아니라고 인정했다. 해외 작은 지역에서 활동한 정도란다.

자격 논란은 국립오페라단에 예술감독 자격에 대한 명문화된 내규가 없다는 것이 근본문제다. 관습적으로 누구나 알만한 성악계 원로가 주로 맡아 왔지만, 연출자나 기획자가 임명되면 늘 잡음이 있어왔다. 기준이 없으니 잡음도 되풀이되고, 이제는 통과의례로 여겨질 정도다. 그러니 한 예술감독도 “역대 단장들도 비슷하다. 처음부터 단장을 해봤던 건 아니지 않느냐”고 반문하는 것이다.

현 상황에서 쟁점은 ‘누가 추천했느냐’와 경력 위조 고의성 여부다. 한 감독은 본인은 피추천인이라 추천인을 알 수 없다고 피해갔고, 경력 위조는 문체부 직원의 단순 오타일 뿐 자신이 사실상 시간강사에 불과한 특임교수 경력을 부풀려봤자 실익이 전혀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경력증명서 제출 여부는 “독창회 준비로 바빠서” 기억 못한다고 했다. 경력증명서 제출이 필요없는 강력한 추천인이 있었음을 시사한 셈이다.

간담회 말미 비대위 관계자들이 현장 난입을 시도하며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그는 “정신 바짝 차리고 열심히 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겠다. 지켜봐주시고 잘못하면 질책해달라”며 사퇴의사가 없음을 못박은 뒤 서둘러 현장을 떠났다.

3월 ‘안드레아 셰니에’로 시작되는 올해 국립오페라단 라인업은 한 감독 취임 전 성악계 원로 자문회의가 꾸린 것인 만큼 그의 자질 여부는 1년 이상 임기를 보낸 뒤라야 윤곽이 드러난다. “끝까지 인사검증 과정을 밝히고야 말겠다”는 비대위와의 대립이 한동안 지속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글 유주현 객원기자 yjjoo@joongang.co.kr, 사진 국립오페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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