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피못잡는 조계종 사태수습|전국 승려대회도 기대미달로 끝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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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신흥사승려살인의 치욕을 씻고 정화와 개혁을 단행하려는 불교 조계종 비상사태수습 노력이 혼미를 거듭하며 종권다툼의 소용돌이를 끝내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점을 드러내 보였다.
사태수습의 실마리를 풀어준 총무원·종회의 총퇴진에 이어 비상대권을 부여받은 원로회의는 수습의 분기점을 마련해 줄 것으로 기대됐던 원로·학인승려 합작의 전국승려대회(5일·서울조계사)까지 열었으나 기대미달로 끝나고 말았다.
대회는 결의를 통해 정화와 개혁추진의 핵이 될 비상종단운영회의구성및 그위원 인선발표(78명)에서부터 호된 비판에 부닥쳐 인선을 철회하고 추후「보강발표」로 미봉하는 난항을연출했다.
비판의 초점은 사태를 야기시긴 직접·간접의 책임을 지고 퇴진한 종회의원(14명)과 총무원간부(2명)들이 사표의 잉크가 마르기도전에 「위원」으로 재등장한 것-.
이같은 인선은 정화대상을 정화주체로 내세운 난센스며 개혁의지를 퇴색케하는 또 한번의 「상식궤도」를 이탈한 구태라는 것이다.
흔히 「조계종4·19」로 비유되기도한 이번 승려대회는 그 전통성과 일대불교정화를 갈구하는 교개안팎의 뜨거운 열망을 배경으로 업고 있어 큰 기대를 모았다.
더우기 대회는 여망대로 사태수습의 전제요건이 해결되고 정화와 개혁추진의 대권을 쥔 원로·학인승려들의 새 출발을 향한 팡파르라는 점에서 적어도 불교혁신을 지향하는 「선명한 기치」에 대한 재확인이 요망됐다.
그러나 사태수습은 본궤도를 들어서자마자 쾌도를 번뜩이기는 커녕 불신의 비판을 받는 난항에 빠져들고 말았다.
사태수습 진행을 지켜본 많은 불교계 인사들은 『총무원-종회간의 종권다툼이 원로·학인승려들까지 참가한 사파전의 종권 나눠먹기식 혼란을 빚고 있는 것같다』고 개탄하기도 했다.
물론 문제를 야기시킨 운영회의 위원 인선은 종단화합의 방편일뿐이고 문제승려들을 A·B·C·D등으로 분류, 단계적 정화를 추진할 계획이라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이는 선별재판의 논란을 불러일으킬 극히 위험한 발상이며 차라리 일괄 자숙공권정지 같은 획일제재가 훨씬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승려대회가 결의한「법호단」결성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는 학인승려들이 앞으로의 정화와 개혁에도 감시원 및 행동대원역할을 계속하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지금까지 보여준 학인승려들의 종회회의장점거, 농성, 특정인 매도벽보 등은 더이상의 무질서 양상으로 발전해서는 결코 안되겠다는게 승단안팎의 우려다.
조계종단사태발생및 거듭되는 수습혼미의 근본원인은 사회통념의 상식이 통하지 않는 승단의 「상식결핍증」때문이다.
사태수습의 실마리를 풀어준 황진경총무원장의 자진사퇴와 종회의 자체해산에 대한 법적 시비의 여지논란, 절차상의 의혹도 상식문제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이다.
조계종단사태는 스스로 선언했을 뿐 아니라 자타가 공인하는 정상이 아닌「비상」이다.
비상의 사태라면 평상의 절차는 이미 무시된 것이 아닌가.
더우기 종단을 대표하는 공인과 공식기구가 공개사퇴 위사를 분명히 하고 매스컴에까지 확인, 보도됐다면 「기정사실」인게 사회적 통념이다.
조계종 전국신도회 불법수호대표자 대회(4일) 결의문은 상식결핍의 혼란을 빚고 있는 승단을 향해 『승려들을 무조건 숭배하던 전근대적 신앙자세를 청산하고 참다운 스님만 외호하겠다』고 선언했다.
또 결의문은 폭력과 비리를 일삼아온「사이비 승려」를 가려내 영원히 불교계에서 추방할것을 강력히 촉구했다.
승단을 향한 이같은 불자들의 절규는 저높은 출가정신이나 구도정신을 요망하기에 앞서 「사회상식」이 통하는 승려행적을 목말라하고 있는 것이다.
조계종단은 하루속히 수습대권을 위임받은 원로 회의가 참신한 승려로 대책위를 구성, 사태수습및 정화·개혁을 단행해야 하겠다. <이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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