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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일보 경제포럼

변양균 기획예산처 장관이 말하는 재정정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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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중앙일보 월례 경제포럼은 25일 변양균 기획예산처 장관을 초청, 본사 대회의실에서 토론회를 열었다.[강정현 기자]

변양균 기획예산처 장관은 25일 중앙일보 본사 대회의실에서 열린 중앙포럼에 참석, "기업이나 개인이 주로 부담하는 의료.교육 등 사회적 비용을 국가와 사회가 부담하는 쪽으로 전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재정이 제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세출 구조의 혁신적인 조정과 더불어 국민부담의 증대 여부와 방식을 결정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변 장관은 "참여정부는 큰 정부를 지향하지 않는다"면서 "향후 재정정책 방향은 시장이 수행할 수 있는 부분은 시장에 맡기고 재정은 국가의 역할과 지원이 필요한 계층에 집중하는 쪽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음은 토론 요지.

▶사회:최근 논란이 되는 감세 논쟁을 어떻게 보나.

▶좌승희:감세 주장은 내수 활성화와 관련도 있지만 정부 역할에 대한 불신 때문에 제기되는 측면도 있다. 감세는 너무 소극적으로 대하거나 반대만 할 사항은 아닌 것 같다. 일부 수용도 필요하다. 근로소득자 중 51%만이 세금을 내는 나라가 어디에 또 있나. 세금을 내는 사람들이 피부로 느끼는 조세 부담이 크다.

▶박진도:감세를 하면 재정 지출도 줄이거나 국채를 발행해야 하는데 빚을 늘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렇다면 재정 지출을 줄여야 하는데 지방.교육.사회복지 등이 그 대상이 될 것이다. 이 부문은 모두 사회적으로 취약한 부분 아닌가. 감세를 반대한다.

▶노성태:감세 논의가 국회에서 조정돼 가는 과정은 의미가 있다고 본다. 국회에서 감세안을 내놓고 지출을 늘리자고 말할 수 없는 것 아닌가. 지난해 감세의 효과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지난해에 소득세.법인세 등을 내리지 않았으면 경제가 더 침체하고 세수는 더 줄었을 것이다.

▶변양균:감세를 한다고 경기가 회복된다고 볼 수 없다. 감세의 경기효과는 불확실하다. 감세로 정부 지출을 축소하면 저소득층 지원사업 등을 축소하는 게 불가피하다. 또 야당 주장대로 12조5000억원을 감세하면 지방 재원이 약 6조원 삭감돼 수도권.지방 간의 격차가 더욱 커진다. 안 그래도 세수가 부족한데 감세를 하면 대규모 재정 적자가 초래될 수 있다.

▶사회:우리나라의 국민부담률이 낮기 때문에 세금 등 부담을 더 늘려야 한다는 주장은 어떻게 봐야 하나.

▶안종범:외국과 단순 비교해 부담률을 높여야 한다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다. 우리의 고령화 수준은 아직 낮다. 65세 이상 고령인구가 차지하는 비중이 아직 9%인데 외국은 25% 수준이다. 그러나 속도가 빠르다. 고령사회가 되면 조세부담률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또 2008년부터 국민연금을 본격적으로 지급하면 부담률이 확 높아진다. 지금은 국민부담률이 낮고 또 올리지 않아도 앞으로 높아지게 돼 있다는 얘기다.

▶변양균:경기와 관련해 놓고 감세 논쟁을 하는 것은 맞지 않다. 경기부양 외에도 재정의 역할은 많다. 참여정부는 큰 정부를 지향하지 않는다. 향후 10년은 성장동력 확충과 사회적 기반 정비에 힘을 쏟아야 한다. 또 의료.교육 등 사회적 비용을 기업과 개인이 부담했는데 이걸 국가.사회 등의 공적 부담으로 전환할 계획이다. 앞으로 재정정책은 우선 규제를 축소하고 서비스를 확대하는 쪽으로 갈 것이다. 시장이 수행할 수 있는 부분은 시장에 맡기고 재정은 국가의 역할과 지원이 필요한 계층에 집중할 것이다. 이를 위해 민간시장에서는 소득계층에 맞는 다양한 서비스가 공급될 수 있도록 보육료 상한제 철폐, 외국 교육기관 설립 자율화, 영리법인병원 설립 허용 등 각종 규제를 철폐할 것이다.

▶서윤석:시장에 맡기면 안 돌아가는 분야가 있어 정부가 나서는 것이다. 그런데 공공성이 있는 부문일수록 심각한 도덕적 해이가 있다. 예를 들어 고등학교는 적자가 나야 한다는 말들이 있다. 그래야 정부에서 보조가 나오기 때문이다. 비용을 줄일 유인이 없다는 얘기다. 동기 부여를 하면서 잘하도록 유도하는 식으로 재정 지출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재정 지출에 대해 평가를 하지만 이와 연계된 보상이나 처벌이 없다 보니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변양균:성과 분석은 당연하다. 재정은 투입 단계도 중요하지만 얼마나 효율적으로 지출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예를 들어 정부가 교육예산으로 국내총생산(GDP)의 4.8~5% 정도 부담한다. 민간의 지출분까지 합하면 GDP의 10% 정도다. 선진국 수준이다. 하지만 국민의 교육 만족도는 떨어진다. 이 때문에 앞으로 재정사업 자율평가 제도를 도입하고 2006년 편성 시 강력하게 세출 구조를 조정할 계획이다. 공무원 인건비와 업무추진비 등은 최대한 절감하고 상시 예산 낭비 감시시스템을 구축해 운영할 것이다.

▶남성일:미국의 전자상거래 사이트인 이베이를 통해 거래를 하면 세금을 안 낸다. 세금이 없다 보니 거래가 잘 된다. 세금을 낸다면 거래가 줄 것이고, 고용도 줄게 된다. 우리는 "정부가 세금을 걷지 않고 납세자가 그 돈을 쓴다면 국가 경제에 무엇이 도움될까, 세금 걷지 않고 대신 민간이 알아서 쓰게 한다면 뭐가 좋을까"하는 것들에 대해, 즉 정부와 민간의 바람직한 역할에 관해서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지동현:사회보장이 국가경쟁력 향상에 도움이 되는 것은 맞다. 그러나 제대로 늘려야 도움이 된다. 사회복지 혜택을 받는 사람이 더 일하는 의욕을 갖게끔 인센티브를 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혜택에 안주하고 일을 하지 않을 수 있다. 이탈리아.스페인에는 이런 자발적 실업자가 많다. 지출 방식이 중요한 또 다른 예가 경제 지원이다. 산업 지원을 위해 지출을 많이 하지만 별 효과가 없는 게 많다. 대표적인 게 중소기업 지원책이다.

▶사회:재정운용 방식과 관련해 미국.일본은 '낮은 국민부담, 많은 국채발행'을, 유럽은 '높은 국민부담, 적은 국채발행' 방식을 택했다. 우리에게 어떤 방식이 맞는가.

▶변양균:그 문제는 조세개혁특위에서 논의 중이다. 12월께에 대강의 안이 나온다. (개인적으로는) 우리 국민이 빚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유럽 방식이 좀 낫지 않을까 보고 있다. 그러나 정치적으로는 유럽 방식을 채택하기가 힘들 것이다. 아직 결정된 것은 없고 앞으로 본격적으로 토론이 될 것이다.

정리=김종윤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참석자 명단>
(가나다 순)

남성일(서강대 교수)

노성태(한국경제연구원장)

박우규(SK경영경제연구소 소장)

박진도(충남대 교수)

서윤석(이화여대 교수)

안종범(성균관대 교수)

좌승희(서울대 교수)

지동현(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김정수(중앙일보 경제연구소장.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