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한센병 엇갈린 판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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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한국과 대만의 한센병 환자들이 각각 제기한 피해보상 청구 소송에서 일본 재판부가 정반대되는 판결을 내렸다. 패소한 한국 한센인들은 판결이 부당하다며 항의했고(왼쪽), 승소한 대만 한센인들은 환호했다. [서울·도쿄 AFP=연합뉴스]

일제시대 소록도의 한센병 요양 시설에 강제로 격리수용됐던 한국인들이 제기한 피해보상 청구소송에서 도쿄지방재판소는 25일 일본 정부에 보상금 지급의무가 없다며 원고패소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같은 처지의 대만인들이 제기한 별도 소송에서는 일본 정부가 보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같은 날 같은 사안을 놓고 이뤄진 소송에서 재판부별로 정반대의 판단을 내린 것이다.

도쿄지재 민사3부는 소록도에 수용됐던 한국인 117명이 제기한 소송에서 "한센병 보상법의 입법과정에서 외지(외국)의 요양소 입소자가 보상 대상이란 인식은 없었다"면서 "원고들은 이 법에서 정하는 요양소의 입소자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반면 같은 법원의 민사38부는 대만의 한센병 요양시설인 낙생원 수용자 25명이 제기한 소송에서 "한센병 보상법은 수용자를 폭넓게 구제하기 위해 입법한 것으로 국적과 거주지에 따른 제한은 없다고 봐야 한다"고 판시했다.

변호인단의 일원인 노마 게이(野間啓) 변호사는 "재판관에 따라 법 해석이 달랐던 것은 문제"라며 즉각 항소할 뜻을 밝혔다. 한국 원고단의 변호인인 박영립 변호사는 "대만인 담당 재판부는 입법 취지까지 판단했지만 소록도 담당 재판부는 형식적 판단에 치우쳤다"며 "일본 사법부의 양식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 한센병 소송= 2001년 5월 구마모토(熊本)지방법원은 나병예방법(1996년 폐지)의 강제 격리수용 규정은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이에 따라 일본 정부는 서둘러 보상법을 제정해 일본인 수용자들에게 1인당 800만~1400만 엔씩 보상금을 지급했다. 이 과정에서 후생성은 고시를 제정해 보상 대상 시설을 명시했으나 옛 식민지였던 한국의 소록도와 대만의 낙생원 수용소는 여기서 제외됐다. 한국인과 대만인 수용자들은 일본 정부가 보상금 지급을 거부하자 지난해 각각 일본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소록도 반응=한센인 집단 거주지인 전남 고흥군 소록도 주민들은 25일 하루 종일 침통과 분노에 찬 분위기였다. 국립소록도병원 김학모 서무계장은 "소송 제기 당사자가 언제 돌아가실 줄 모르는 고령자로 수십년간 한이 맺힌 분들인데 일본 사법부가 이들의 한을 무참히 짓밟았다"고 말했다.

도쿄=예영준 특파원
소록도=서형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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