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세대 혼혈가수 샌디 김, LA 한인타운서 경비회사 오픈

미주중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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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디 김씨의 B&B시큐리티는 아직 걸음마 단계다. 영업을 뛰지 않는 시간에는 이렇게 직접 경비업무에도 나선다.

나이가 좀 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눈'이 살아 있었다. 그에게 물으니 눈이 계속 살아 있어야 경비를 제대로 할 수 있다고. 그냥 보고만 있는 게 아니라고 강조했다. 요즘 한국에서는 세상이 달라져 다문화 가정이 많아져서 이에 대한 정책적 배려도 많지만 혼혈가수 1세대 샌디 김씨의 어린 시절은 그야말로 호랑이가 담배를 피우던 시절이다. 1948년생 혼혈 출신 탤런트 겸 가수 샌디 김씨가 미국에 자리를 잡은 지도 35년, 결코 많지 않은 나이지만 자신의 비즈니스를 시작해 화제다.

본명인 김복천 보다는 50대 이상 한인들에게 잘 알려져 있는 '샌디 김'이 미국에 와서 가장 많이 일한 경비 업무를 전문으로 하는 회사 'B&B시큐리티'를 최근 열었다. 아직 규모는 크지 않지만 그의 인생을 지켜본 주위 사람들은 그의 새 출발에 잔뜩 기대를 하고 있다.

"사실 저도 미국에 올때 공부를 하기 위해서 왔습니다. 한국에서 연예인 생활을 해봤지만 활동 영역이 넓지 않았죠. 지금이야 인순이가 원로 가수가 됐지만 그때는 진짜 그때였어요."

TBC에서 공채 탤런트를 시작했던 것이 1969년, 그 해 태어난 사람들이 46세가 됐으니 그가 얼마나 오래 전에 TV에 나왔던 인물인지 알 수 있다. 당시 그의 히트곡은 '잃어버린 고향'이다. 그리고 1994년 한국에 잠깐 나가서 부른 노래도 '내 고향은 코리아'였다. 하지만 이제 그의 고향은 자녀들의 고향인 미국이다. 한국에서 살았던 날들보다 미국에서 더 오래 살았으니 그렇게 부를만도 하겠다.

사실 미국에 와서 나이트 클럽도 해봤고 물리치료 마사지 업소도 해봤다. 그리고 남들같이 땀 흘려 일하기 위해서 페인트업도 경험해 봤다. "그래도 경비업으로 돌아오고 나니 이것이 천직인가 싶기도 해요. 이제 한인 타운을 제 손으로 지키게 됐습니다. 현재는 타운내 쇼핑몰을 경비하고 있고요. 앞으로 여러 아파트에도 전문 경비인력을 파견할 계획입니다."

얼굴이 알려져 있다고 대충 엉터리로 하는 경비업이 아니다. 그가 85년 미군에서 제대한 후 처음으로 가졌던 직업이라서 업계 경력을 작게 따져도 35년이다. 최고참이다. 물론 200만달러짜리 보험은 기본, 이미 회사를 잘 키워보겠다는 비전도 있다. 이제 경비업으로 창업을 하면서 새삼 느낀 것도 하나있다. 예전에 비해서 한인타운이 많이 복잡해졌지만 더 안전해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남을 배려하지 않고 헤드인으로 주차하지 않고 거꾸로 주차하는 사람을 볼 때마다 주의를 준다고 한다. 경비업의 ABC라고 한다. 헤드인이 아니면 차를 빨리 뺄 수가 있어서 여러가지 사고를 유발할 수 있다고 귀띔했다.

그는 "사실 피부색이 검은 사람이 한국말을 잘한다고 놀라는 일이 아직도 있다"며 "하지만 이번 기사로 원래 한국사람이었다는 것을 기억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아직 영어보다는 한국어가 낫다고.

장병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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