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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할머니 위해 … ‘수정궁’으로 간 청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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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푸른 용’이 ‘수정궁(水晶宮)’에 입성했다.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1부리그) 크리스탈 팰리스(Crystal Palace)는 3일 “챔피언십(2부리그) 볼턴의 미드필더 이청용(27)을 영입했다”‘고 발표했다. 계약기간은 2018년 6월까지다. 크리스탈 팰리스가 볼턴에 이적료 50만 파운드(약 8억2000만원)와 미드필더 배리 배넌을 임대로 주고, 올 시즌 1부리그 잔류 시 볼턴에 50만 파운드를 추가로 지불하는 조건이다.

 이청용의 측근은 3일 “이청용은 ‘새 감독’과 ‘가족’ 때문에 이적을 결심했다”고 전했다. 이청용은 2009년 볼턴에 입단해 6시즌 동안 195경기(20골·32도움)에 출전했다. 볼턴과 계약이 끝나는 오는 6월 팀을 옮길 경우 이적료가 발생하지 않아 자유로운 이적이 가능했다. 그런데 지난 2일 크리스탈 팰리스 새 지휘봉을 잡은 앨런 파듀(54·잉글랜드) 감독이 이청용을 강력하게 원했다. 2010년부터 5년간 뉴캐슬을 이끈 파듀 감독은 뉴캐슬 시절에도 이청용 영입을 추진했다. 파듀 감독의 끊임없는 러브콜에 이청용의 마음도 움직였다.

 이청용의 각별한 가족 사랑도 이적에 영향을 미쳤다. 이청용은 FC 서울에서 뛸 때 노랑색 축구화를 신었다. 관중석의 외할머니가 자신을 알아보기 쉽도록 튀는 색깔을 선택한 거였다. 이청용은 2009년 이적료 44억원에 프리미어리그 볼턴으로 이적했다. 외할머니는 손자의 경기를 TV로 보는 게 낙이었다. 하지만 이청용은 2011년 7월 오른쪽 정강이뼈가 골절 돼 10개월간 재활했고, 볼턴은 2012년 챔피언십으로 강등돼 2시즌 연속 승격에 실패했다. 이청용은 할머니가 TV로 자신의 경기를 볼 수 있는 프리미어리그 팀을 원했다.

크리스탈 팰리스 구단 입단에 앞서 메디컬 테스트를 받고 있는 이청용. [크리스탈 팰리스 트위터]

 겨울 이적시장 마감(한국시간 3일 오전 8시)을 앞둔 이청용은 2일 오후 10시경 런던으로 향했다. 이청용을 양아들처럼 생각하는 볼턴의 필 가트사이드 구단주는 마지막까지 “청용, 다시 돌아오면 안되겠니”라고 붙잡았고, 프리미어리그 헐시티도 막판까지 이청용을 영입하려 했다.

 ‘의리의 남자’ 이청용은 최근 3년간 볼턴과 함께 프리미어리그로 승격하겠다며 수많은 러브콜을 뿌리쳤다. 하지만 이청용은 국내 팬들의 바람대로 새로운 도전을 택했다. 이청용은 메디컬 테스트를 통과한 뒤 3일 오전 6시경 최종 사인했다. 정들었던 친정팀 볼턴에 이적료를 안기고 아름답게 이별했다. 볼턴 구단은 ‘이청용의 헌신에 감사를 전한다’며 앞날을 축복했고, 볼턴 팬들은 홈페이지에 ‘청이(chungy·이청용의 애칭)! 은퇴는 꼭 볼턴에서’라는 글을 남겼다.

 1905년 창단한 크리스탈 팰리스는 런던 남부의 셀허스트 파크를 홈구장으로 쓰고 있다. 아시안컵 결승전에서 한국과 맞붙은 호주의 주장 밀레 예디낙(31)이 팀의 주장이다.

  크리스탈 팰리스는 1부리그보다 하부리그에 머문 시간이 더 길었다. 최고 성적이 1990-91시즌 FA컵 준우승, 1990-91시즌 1부리그 3위다. 2012-13시즌에 챔피언십 승강 플레이오프를 거쳐 8년 만에 프리미어리그로 승격했고, 2013-14시즌 11위를 기록하며 잔류했다. 올 시즌 20팀 중 13위(5승8무10패·승점23)지만 2부리그 강등권인 18위 헐시티(승점19)와 승점 차가 4점에 불과하다. 올 시즌 23경기에서 25골에 그쳤고, 무승부가 8경기나 돼 공격력 강화를 위해 이청용을 급히 수혈했다.

  이청용은 이번 시즌 3골·4도움을 기록 중인 ‘주전’ 제이슨 펀천(29·잉글랜드), 맨유에서 이적한 ‘백업’ 윌프리드 자하(23·잉글랜드)와 주전 경쟁을 펼친다. 박문성 SBS 해설위원은 “파듀 감독은 뉴캐슬 시절 뎀바 바(30), 요한 카바예(29) 등 기술을 갖춘 선수들을 중용했다”며 “ 잉글랜드의 선 굵은 축구 대신 역동적인 축구를 구사하려는 의도 같다. 볼을 예쁘게 차는 이청용이 투박한 펀천보다 경쟁력이 있다”고 전망했다.

 이청용은 지난 10일 아시안컵 오만과 경기에서 정강이뼈에 실금이 가서 3주 진단을 받았다. 막바지 재활훈련 중인 이청용은 2월 셋째주 경 복귀가 가능해 22일 아스널과 프리미어리그 경기에 교체출전이 유력하다.

박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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