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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리집 지하실에 숨겨둔|수기통장-비밀장부가 단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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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6월15일은 김철호 명성그룹회장에게는 운명의 날이었다.
여름철 대목을 앞두고 설악산 콘도미니엄의 중도금이나 잔금이 들어오기 시작하고 때맞추어 계열기업의 레저타운과 엘더베리주스 상품에 대한광고선전에 박차를 가하고 있을때다.
이날 오전 15,16명의 국세청 조사반원들이 서울 비원앞에 있는 삼환빌딩 5층 명성그룹 본부에 들이닥쳤다. 조사반장들이 회장실과 경리부 문턱에 들어서자마자 검찰총장이 발행한 지명보를 내보이며 직원들에게손을 머리위에 얹고 꼼짝말라고 명령했다.
뒤이어 다른 조사요원들이 책상위와 캐비넛에 보관중인 각종 서류를 긁어모아 상자에 챙기기 시작했다.
눈이 휘둥그래진 명성의 임직원들은 이게 세무사찰이라는 것이구나하고 내심 놀라면서 조사요원들이 지시하는대로 호주머니 속에든 모든 물건을 책상위에 꺼내놓았다.
현찰과 각종 증영서등을 제외한 각자의 메모지나 수첩등도 모조리 압수되어 서류꾸러미에 들어갔다. 조사반원들은 이곳저곳에서 모은 서류뭉치등을 대기중인 소형트럭에 운반, 마치 아무일도 없었다는듯이 유유히 국세총으로 돌아왔다.
이때부터 양평동에 있는 국세청심리실에서는 본격적인 명성그룹의 해부작업에 들어갔다.
명성그룹 본부는 세무사찰을 받고있다는 소문이 새어나갈까봐 모두들 쉬쉬했다.
지난 7월5일 안무혁국세청장은 보도진과 만나는 자리에서 명성그룹에대한 세무조사가 이미 실시되고 있음을 밝히고 이의 보도를 유보해달라고 요청했다.
국세청 당국자들은 이때 조사반원들의 활동이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세무조사일 뿐이지 결코 세무사찰이 아니라고 말했다.
김철호회장은 세무사찰이 진행되는동안 몇 차례 안정장을 만나려고 했으나 그런 기회는 전혀 마련되지 못했다. 국세청 조사요원들이 김회징을 만나 D개 계열기업의 자금조달방법을 물어보면 콘도와 골프장회원권 분양으로 7백80억원을 마련해 꾸려왔다고 진술해 맥을 잡을수가 없었다.
7월 하순께부터는 풀릴듯하던 명성의 사상사용 내용도 결정적인 증거를 포착하지 못해 세무사찰도 암초에 걸리는듯 했다.
조사요원들은 서울명동에 있는 은행집회소와 상은혜화동지점 및 국세청 심리실에 각각 임시 연락사무소를 설치, 탈세협의자등 관계자들읕 불러 조사하고 관계서류 심리에 박차를 가했다. 조사요원은 50명이나 되었다.
작년 세무조사때 17억2천만원을 추칭당한 경험이 있었던 명성은 이번에도 그정도로 끝나지 않겠느냐고 처음엔 쉽게 생각했으나 국세청의 조사가 예상외로 강도있게 진행되자 자구책을 마련하는 긴급 회의를 몇차례 열었다는 후문이다.
7월31일∼8월1일 조석간에 실린 김회장의 강호제췌께 알리는 말씀」 이라는 대문짝만한 광고는 명성을 지켜본 일반인을을 의아하게 만들었지만 무엇보다 세무사찰을 실시하고 있는 국세청에는 이만저만한 파문을 던져준 것이 아니었다.
안무혁국세청장은 일요일인 지난달 31일 아침 집에서 조간신문을 들춰보다 명성의 광고를 보고 적잖이 놀랐다고 말했다.
도대체 이게 무슨말인가 하고 읽고 또 읽고해서 그 진의를 파악하려고 노력했다고 했다.
국세청 관계자들은 명성의「광고사태」 를 정부의 공권력행사에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였으며 마치 세무조사가 갈못 진행되고 있는것처렴 공격하고 있는 명성에 대해 무척 불쾌해했다.
안청장은 월요일인 1일 새로 이사한 국세청 청사에 첫 출근을 하자마자 명성에 대한 세무사찰 중간걸과를 발표할수 있도록 자료를 준
비하라고 관계자에게 지시했다.
중간발표라도 하지않으면 국세청의 세무사찰이 너무 지나치다는 비난이 있을 수드 있는데다 최종발표가 나올때까지 갖가지 루머와 유언비어가 난무해 쓸데없는 오해를 살 우려가 있었다고 관계자들은 말했다.
안청장은 이날 같은 청사에 있는 강경식재무부강관에 이어 오후에는 김상협국무총리에게도 명성에 대한 세무사찰내용을 보고했다. 조사요원은 50명에서 1백명으로 증원되었다.
이때부터 명성에 대한 조사가 더욱 죄어졌다. 어음교환이 돌아오기 시작한 것이다. 이대로 보고있다가는 빚을 받기 어렵다고 판단한 채권자들이 갑자기 마음을 돌변했다.
다급해진 김회장은 여러사람에게 다리를 놓아 『광고가 잘못되었다. 기업운영을 잘 해보겠다는 뜻을 알리겠다는 것이 오해를 불러일으킨것 같다』고 국세청에 해명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명성은 지난6일까지는 상은혜화동지점 김동겸대리로 부터 사분자금을 얻어 펑크를 메웠으나 김대리가 본격적인 조사를 받으면서 부터 자금을 얻을 길이 없었다. 급한 나머지일반사채시장에 어음을 내놓았으나 거들뗘 보는 사람들이 없었다. 월5%의 이자를 물고서야 겨우 몇천만원을 빌어쓸수 있었다한다.
이와 때를같이해서 김대리에 대한 국세청의 조사도 더욱 죄어들어갔다. 조사요원들은 지난 6일 동숭동에 있는 김대리의 지하실을 급습해서 이번사건을 푸는 결정적 열쇠를 찾아냈다.
지하실 책상위애 있는 책꽂이의 한권을 손으로 밀었더니 빙그르르 돌면서 뒤쪽 공간에 비밀장부와 수기통장등이 보관되어 있는것이 발견되었다.
지금까지 애를 먹이던 모든 문제들이 한꺼번에 풀렸다. 조사요원들이이 자료를 김대리에게 내밀자 그는고개를 푹 숙인채 모든것을 자백했다고한다.
상은의 사채중개행위가 명백히 드러나자 불똥은 재무부와 은행감독원에 튀었다. 이재국관계자들의 구수회의가 자주 열리고 세무사찰 이후의 명성뒤처리가 어떻게 묄 것인지에 대한 비밀스런 논의가 몇차례 있었다.
은행감독원은 시중은행의 수신상담간부들의 회의를 긴급소집했다.
국세청 조사요원들이 김대리에게 사채자금을 맡긴 전주의 정체를 찾느라 증권가를 뒤지는 바람에 이와관련 없는 다른 사채업자들이 근처에도 나타나지 않았으며 증권시장은 더욱 냉각되었다.
사태의 급변을 눈치캔 김철호 명성그룹회장이 11일을 전우해서 감자기모슴을 나타내지 않자 그의 「잠작설」 이 파다하게 나돌았다.
그러나 13일 조사요원과 함께 본부에 나타난 그는 국세청이 수집한 증거자료를 들여다보면서 다음과 같은 확인서를 제출했다. 『최근에 자신이 밝힌 사상 전주는 사실과 다르며 조작된 것이다.
김회장은 최근 며칠동안 은행집회소 등에서 조사받으면서 밤이되면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가서 잠을 잘때는 조사요원이 동반됐음은 물론이다.
국세정은 김대리의 비밀장부와 통장에서 잦아낸 자료를 컴퓨터에 집어넣어 사채전주명단을 작성했다. 이 전주들이 대부분 기업주라는데서 자신들도 놀란 표정이다.
세무사찰 결과에 대한 최종보고자료는 지난11일부터 작성되었다. 『발가벗겨 보여주겠다』 는 것이 조사반원들이 유일하게 기자들에케 던지는말이다.
16일 아침 재무부는 장·차관과 대변인을 포함한 1급회의가 오랜시간 계속되었으며 같은 건물 5층에 있는 국세청장실에서도 간부들이 오랫동안 문을 나서지 않았다.
세무사찰 이후의 명성대책에 머리를 짜고있다. 강재무장관은 이날 오후 청와대에 올라가 더욱 관심을 끌었다.
이날 오후늦게 기자들에게 명성세무사찰 결과를 브리핑한 안국세청장은 007가방 4개에 관계서류를 잔뜩 넣어가지고와서 『뭐든지 궁금한 것은 다 물어보십시오. 숨김없이 답변해드리겠습니다』 고 말했다.
이번 국세청 조사는 올해부터 발표된 실명거래법의 덕을 록톡히 보았다. 작년까지는 예·적금에 관한 비밀보장법 때문에 각 금융기관에 자금추척조사가 사실상 불가능했으며 이번에는 실명법 때문에 모든 은행조사가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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