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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와 이승만 대통령<36>|프란체스카여사 비망록 33년만에 공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계속 북진하고 있는 우리 애들은 사기충천하여 동해안쪽에서 우렁찬 노래를 부르며 급진중이라고 신성모 국방장관이 보고해왔다.
적의 저항은 별로 없었다고 했다. 지금 우리국군 2개사단의 주력이 38선북방으로 진격중인데 3사단은 동해안에서 북진중이고 수도사단은 양양에서부터 진로를 서북방으로 향하여 산악지대를 전진중이다.
북한주민들 호의적
북한주민들의 태도가 우리 애들에게 극히 호의적이라는 정일권 장군의 보고가 있었다.
진격중인 우리 애들에게 하느님의 가호와 은총이 있기를!
미제 1해병사단도 의정부에 돌입하였고 미제1기 감사단도 적극적인 수색작전을 벌여 적병 2백여명을 생포했다고 한다. 우리 3사단의 각 부대는 5백명 이상의 적을 포로로 잡았다.
유엔에서 필리핀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의 대표들이 소련블록의 제안을 정면으로 반대하고 『유엔군은 평화통일의 길을 용이하게 하기 위하여 북한군의 저항을 격파하고 전한국을 점령해야 한다』고 말했다.
필리핀의 「로물로」외상, 캐나다의스펜더」외상은 호주의 「피어슨」대표의 의견에 동조하여 한국이 먼저 북한을 침범했다고 주장하는 소련대표 「비신스키」의 주장을 통렬히 반박했다고 한다.
그리고 소련이 한국은 경찰국가라고 억지 비난하는 것에 대해서도 그렇지 않다는 실명을 했다.
이토록 적극적으로 우리 한국을 위해 유엔에서 활약하고 있는 필리핀의 「로물로」외상은 대통령과 각별한 친분이 있고 서로 마음이 통하는 반공투사다.
독립운동하던 시절 워싱턴에서 「로물로」씨와 우리는 바로 이웃에 살면서 가족처럼 가까이 지냈다. 당시 「로물로」씨도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자기조국의 독립을 찾기 위해 온갖 고생을 다했는데 나라는 달랐지만 모든 면에서 서로 돕고 격려하며 함께 투쟁한 동지였다.
대통령은 「맥아더」장군을 만날 때 「로물로」씨와 동행하기도 하고 연설을 하러 다닐때도 「로물로」씨, 임병직 씨등 셋이 동반하는 경우가 많았다.
「로물로」씨 부인과 나는 서로 많은 손님을 접대해야 할 때는 모자라는 그릇도 서로 빌어 쓰기도 하고 어쩌다 맛있는 특별한 음식을 만들면 서로 나눠먹기도 했는데 「로물로」씨가 한국음식을 좋아하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로물로」씨 댁에서 전지가위나 연장같은 것을 빌려 오면 가끔 대통령이 직접 가서 정원수를 다듬어주기도 하고 창틀이나 문·가구 같은 것을 손봐주기도 했다.
이런 대통령을 「로물로」씨는 『큰아버지』라고 부르며 존경하고 따랐는데 모든 일에 유장하고 낙천적인 「로물로」씨의 인품을 대통령은 사랑했다.
외딸 찾았다고 인사
이제 그 「로물로」씨가 강인한 투지와 노련한 수단을 갖춘 반공투사로서 아시아의 반공을 위해 유엔에서 임병직씨와 손을 잡고 공산블록에 대항하여 싸우고 있다니 한결 마음이 든든하다.
유엔에서 우리 한국을 위해 애쓰고 있는「로물로」외상과 모든 우방대표들의 건투를 빌며 앞으로의 활동에 큰 기대를 가진다.
모윤숙씨가 단정하고 말쑥한 차림을 하고 생기가 도는 모습으로 우리 임시관저를 찾아왔다.
전쟁 중 잃어버렸던 외딸 경선이를 찾았다고 대통령께 감사드리러 온 것이다.
지난번 서울 경무대에서 지저분한 차림으로 대통령을 찾아 뵙고 자기를 버려두고 후퇴했다고 원망하며 딸을 찾아내라고 떼를 썼던 일을 사과하러 왔다고 말했다.
우리는 딸을 찾았다는 말을 듣고 퍽 반갑고 기뻤다.
지난번 서울 환도식이 끝난 다음 경무대로 찾아온 모윤숙씨가 대통령에게 원망섞인 말을 했을 때 대통령은 『그래, 내가 죄가 많아. 딸은 꼭 찾아줄게. 윤숙이의 건강부터 우선 회복해야 하겠어』하고 위로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속으로 전쟁 중에 잃어버린 딸을 정말 찾을 수 있을까 하고 걱정이 태산같았는데 이제 딸을 찾았다니 참으로 다행이다.
어떻든 모윤숙씨는 잃어버렸던 딸을 찾았으니 기쁘겠지만 전쟁 중에 가족을 잃어버린 채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을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프다.
가족이산 가슴아파
대통령은 모윤숙씨에게 『내 죄가 많아, 내 죄가 많아』하고 말했지만 정말 죄를 지은 자는 공산침략자들이다. 나는 양민을 학살하는 그들이야말로 벌을 받아 마땅하다고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대통령의 전란수습을 위한 원조요청과 「맥아더」원수의 주선으로 한국의 전재민을 위해 4천만달러에 달하는 의료품과 식료품, 천막등이 이미 한국을 향해 떠났다고 경제협조처 「앤더슨」소장이 알려주었다.
「애치슨」미 국무장관은 미국방송협회에서 「엘리노·루스벨트」여사의 질문에 답변하여 한국의 부흥촉진이 유엔총회의 당면임무라고 말했다.
민주진영의 집단안보체제확립과 함께 한국의 부흥책은 이 안전보장기구 속에서 인류의 생활을 향상시키는 거대한 건설적 사업을 추진시키는 데 있다.
한국은 이번 전쟁으로 인해서 폐허가 되었으며 실로 이곳이야말로 우리가 건설사업을 개시할 곳이다.
유엔군은 침략을 저지하는 동시에 전쟁을 거의 종결시키려고 노력하고있다.
지금이야말로 국제연합제국은 그 지식과 역량을 경주하여 한국민중을 위해 새로운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
우리들은 과거 수개월간 공동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모든 산업과 건설면에서 상호협력하는 것을 유엔을 통해서 이루어봤다는 것을 강조하며 여러 우방의 협력을 구했다.
한편 대통령은 전후의 복구와 건설사업에 최선을 다할 것과 악을 악으로 갚는 일은 정의인도에 어긋나는 것이니 절대로 피해야 할 것이며 사사로운 원한으로 분을 푸는 일이 없도록 국민들에게 호소했다.
주한미국대사관으로 쓰고 있는 반도호텔을 수리하러 온 「노먼·디한」이라는 젊은 건축기사가 우리를 예방했다.
지금 수리공사가 진행중인데 급속히 복구하는 대로 집무를 하게 될 것이라고 했는데 난공사라고 한다.
경무대는 유리 석 장만 깨진 채 비교적 피해가 적다고는 하지만 모든 하수도시설이 막혀있고 내부가 모두 엉망진창이 되어 총무처에서 수리가 필요하다고 한다. 대통령은 경무대에 되도록 수리비를 들이지 말고 꼭 필요한 곳만 손보도록 지시했다.
경무대개수 난공사
나는 경무대가 빨리 수리되어 이주했으면 좋겠다.
오늘 서류를 정리하다가 대통령이 써 놓은 시 한편을 발견했다.
부대어상수책우
장개십리낙강두
초형어제개종역
한남한북전말휴
(며느리는 생선바구니 이고
시어머니는 소를 몰고
낙동강 십릿길에 장보러들 가는구나
아우 형 전쟁에 다 나가고
전쟁은 상기 아니 멎고)
언젠가 진해 부산길에서 늙고 젊은 부녀자들이 낙동강 장터를 향해 가는 것을 보고 대통령이 지은 한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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