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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드리라 열릴 것이니 천만 관객 돌파한 ‘난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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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2호 06면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공연계 역사 새로 쓰는 송승환

연극배우 박정자가 공연 ‘난타’의 성공에 건넨 축하 인사다. 난타는 그야말로 두드림의 예술이다. 평범한 일상의 공간인 주방이 무대로 변하고, 도마를 북 삼고 칼을 채 삼아 신나게 두들긴다. 1997년 10월 처음 공연을 올린 후 잘려 나간 오이와 당근만 각 31만 2900개에 달한다. 지난 17년간 우직하게 때리고 흥겹게 즐겨 온 결과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동안 철옹성같이 단단해 보였던 문이 하나씩 열리기 시작한 것. 대사 한 마디 없이 100분을 어떻게 끌고 갈 것인가에 대한 의구심은 이내 새로운 비언어극에 대한 환호로 바뀌었다. 서울 호암아트홀에서 초연한 공연단은 영국 에딘버러와 미국 브로드웨이를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뚫고 들어갔다. 이후로도 최초 행렬은 이어졌다. 국내 최초로 전용 공연관을 만들었고, 51개국 289개 도시에서 3만1290회의 공연이 올려졌다. 누적관객 1008만 명이라는 대기록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지난달 26일 충정로 전용관에서 열린 1000만 관객 돌파행사에 선 송승환(58) PMC프로덕션 회장은 감격에 겨운 듯 울먹이며 소감을 밝혔다. 자식이 없는 그는 난타를 두고 자식보다 소중한 존재라고 표현했다. 그는 “2살 때 에딘버러에 가고 6살 때 브로드웨이에서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지만 아직 17살 미성년자”라며 “앞으로 더 잘 키워서 오랫동안 여러분과 함께하겠다”고 말했다. 집사람이 둘이라고도 했다. 회사 안살림을 도맡아 하는 이광호 공동회장을 일컫는 말이었다. ‘난타의 아버지’라는 말은 그에게 수식이 아니라 진짜 가족을 완성하는 요소였던 셈이다.

하지만 송 회장이 낳았을지언정 키워준 아버지는 수도 없이 많은 듯했다. 이날 나란히 무대에 선 초연 배우 김문수ㆍ김원해ㆍ류승룡ㆍ서추자ㆍ장혁진이 대표적이다. 영화 ‘7번방의 선물’ ‘명량’ 등에서도 활약했던 류승룡은 “영화 천만 관객과는 느낌이 사뭇 다르다”며 “해외 공연을 갈 때는 국가대표란 마음으로 태극기를 달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당신의 땀과 열정이 있었기에 천만 관객이 난타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라는 간결한 감사패 문구가 마음을 울렸다.

난타로 인해 보다 비옥해진 공연계의 토양은 여러 작품을 자라게 했다. 수상자로 참석한 배우 김성녀는 “2005년 모노드라마 ‘벽 속의 요정’을 만들어주신 덕분에 저도 10년째 중국ㆍ미국을 오가며 기록을 갱신하고 있다”며 감사를 표했다. 한국뮤지컬협회 박명성 이사장은 “‘맘마미아’가 10년 동안 정말 열심히 했는데 아직 200만 명도 못 채웠다”며 부러움 섞인 고충을 토로하기도 했다.

두드림의 미학을 아는 송 회장의 행보는 한층 더 활발해졌다. 이달부터 백설공주를 19금 코드로 비튼 창작극 ‘난쟁이들’을 무대에 올림과 동시에 찰리 채플린을 소재로 한 비언어극 작품을 기획하고 있다. 지난해 12월부터는 뮤지컬 ‘라카지’에서 에두아르 딩동 역을 맡아 20년 만에 배우로도 복귀했다. 그는 “지난해 태국에 이어 올해는 중국 광저우에 전용관을 연다”며 “이 추세로라면 1억 명 돌파도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구하라, 그리하면 얻을 것이다.’ 그는 지금 다시 구하고 있다.

글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사진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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