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차 자존심' GM의 시가총액, 할리데이비슨에 밀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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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최근 경영실적 악화로 어려움을 겪는 미국의 대표적 자동차업체 제너럴 모터스(GM)가 매출 규모가 20분의 1에도 못 미치는 모터사이클 업체 할리 데이비슨에 시가총액도 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21일 비슷한 시기에 창업해 미국 제조업의 상징으로 군림해 온 두 회사의 명암이 최근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 운명 엇갈린 '미국의 상징'=1907년 창업한 할리 데이비슨과 이듬해 문을 연 GM은 모두 미국 제조업의 자존심으로 화려한 '영광'을 누린 기업들이다.

한때 일본업체들에 밀려 파산 직전의 위기에 몰렸던 점도 닮았다.

할리 데이비슨은 1985년에 일본의 혼다.스즈키 등에 밀려 부도 위기를 겪었고 GM도 1992년 파산 직전의 상태까지 갔다. 이후 두 회사 다 철저한 품질 개선으로 회생한 것도 똑같다.

그러나 최근 GM이 1분기 경영실적이 적자가 예상되면서 주가 폭락 등 위기에 처한 반면 할리 데이비슨은 승승장구하고 있다.

18일엔 양 사의 주식 시가총액(뉴욕증시 기준) 규모가 사상 처음으로 역전돼 할리 데이비슨(176억8000만달러)이 GM(161억6000만달러)을 앞섰다.

◆ 혁신의 힘, 할리 데이비슨=할리 데이비슨은 핵심 사업에 집중하고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데 성공했다.

한 때 소형 스쿠터는 물론 골프장용 카트.스노우 모빌.볼링장용 기계 사업까지 하던 이 회사는 비핵심 사업을 모두 정리했다. 대신 제대로 된 물건을 만들고 브랜드 가치 높이기에 힘을 쏟았다.

'호그'(HOG)라 불리는 자사 제품 소유 고객 대표단을 조직해 이들의 의견을 제품 생산에 적극 반영했다.

그 결과 파산에서 벗어나게 됐고, 1986년 상장 이후엔 19년 연속으로 매출.순익이 늘고 있다.

◆ 과도한 비용에 짓눌린 GM=GM의 패인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비용을 견디지 못한 데 있다.

강력한 노조와의 마찰을 피하기 위해 GM은 직원.퇴직자에게 후한 의료보험과 연금을 주고 있다.

615억달러에 달하는 이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GM의 부채는 3000억 달러가 넘는다. 게다가 비핵심 사업부문을 제대로 정리하지 못해 지난해 순익(69억달러)에서 보험.담보대출(모기지) 등 금융 부문의 수익이 본업보다 많았다. 또 고객들을 끌어들일 만한 브랜드 가치 구축에도 실패했다.

투자은행 UBS의 자동차 담당 애널리스트 롭 힌클리프는 "GM 차의 품질은 나아졌지만 GM 제품을 꼭 사야겠다고 생각하는 고객은 거의 없는 편"이라고 말했다.

◆ 구조조정 '칼' 뽑아들었지만=경영악화에 견디다 못한 GM은 결국 사무직 등 화이트 컬러 직원을 포함한 대규모 구조조정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1일 GM이 3만8000여 명의 비노조 사무직 중 부서별로 최대 28%까지 감원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라고 보도했다.

또 GM이 막대한 건강보험.연금 비용을 줄이기 위해 곧 미국 최대의 자동차 산별노조인 자동차노조연맹(UAW)과의 협상에 들어갈 것이라고 전했다. GM의 기사회생이 가능할지에 전세계의 이목이 모아지고있다.

이승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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