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시(詩)가 있는 아침]-송수권 '황태나 굴비 사려' 부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7면

-송수권(1940~) '황태나 굴비 사려' 부분

굴비 한 두름은 스무 마린데 북어 한 쾌도 스무 마리다
큰 것은 열 마리다. 남쪽은 보리가 익는데 조기철이고
북쪽은 눈이 내리는데 명태철이다
칠산바다에 봄바람이 불면 너는 오고
주문진 속초항에 눈이 오면 나는 간다
나는 생태탕이 그리워 가고
너는 생조기탕이 그리워 온다.
맛 따라 오고 간다. 눈 따라 오고 가고
바람 따라 오고 간다


등짐장수가 골목을 누비며 "황태나 굴비 사려!" 외치면, 더러 집으로 맞아 사들이기도 하고 그냥 흘려듣기도 하고 그랬다. 그래도 동해산 명태와 황해산 조기가 어떻게 '황태 한 쾌'와 '굴비 한 두름'으로 '한 등짐'이 되었는지 그 까닭을 헤아릴 틈은 없었다. "어랑, 어랑, 어랑, 어랑" 하면서 그 사내들의 흥얼거림을 뇌어보니 이제 알 만하다. 풍상의 몰골에 서린 '떠돌이'라는 풍토병도 고스란히 떠오른다.

박덕규<시인.소설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