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mily/리빙] "우아~시원해" 요즘 찜질방은 초등생 해방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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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보통 오후 2시쯤 찜질방에 들어가 3시간 정도 있어요. 물론 해지기 전에 집에 돌아가 저녁 식사는 가족과 함께 하고요." 주부 얘기가 아니다. 매주 토요일이면 친구들과 집 근처 찜질방에 간다는 초등학생 은주(12.이하 모두 가명임)의 말이다. 초등학생이 무슨 찜질방이냐며 목소리가 높아지는 어른들도 있겠지만 얘기를 조금 더 들어보자.

서울 방배동에 사는 석준(11)이는 항상 바쁘다. 방과 후엔 학원에 다니느라 잘 놀지 않는다. 대신 토요일 낮에 친구들과 찜질방을 찾는다. "왜 오냐고요? 스트레스 때문이에요. 저희가 학원을 몇 개 다니는지 아세요? 여기 와서 친구들과 휴게실에 둘러앉아 수다도 떨고 떡볶이도 사먹으면 피곤이 좀 풀리는 것 같아요. 어른들도 이런 맛에 찜질방에 오시나 봐요."

찜질방을 주말 놀이터로 삼는 초등학생들이 늘고 있다. 예전 같으면 부모님 손을 잡고 가족 단위로 많이들 왔지만 지금은 친구들과 오는 경우가 많아졌다. 여의도의 한 대형 찜질방 직원은 "눈에 익은 단골 꼬마 손님들이 많다. 대부분 낮에 친구들과 와서 놀다 가는데, 남자 아이들의 경우엔 시끄럽게 뛰어다니지 않도록 주의를 자주 주는 편"이라고 말했다.

# 왜 찜질방을 가느냐 하면

초등학생들이 주말에 찜질방을 찾는 가장 큰 이유는 쌓인 학원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서다. 은주의 경우 주중엔 영어.수학.플루트 학원에 다니는데 아침에 등교한 후 집에 돌아오는 시간은 보통 오후 7시. 집에 돌아와서도 숙제하고 공부하느라고 놀 생각은 할 엄두도 못 내는 실정이란다. 여의도에 사는 도현(12)이는 "내 친구 중에 1주일에 학원을 12개나 다니는 아이도 있어요. 주말에도 학원 가느라 친구들과 찜질방 한번 가기도 힘들대요"라고 말할 정도다.

또 다른 이유는 놀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해서다. 경기도 분당에 사는 우제(12)는 찜질방에서 주로 PC게임을 즐기는데 부모님 잔소리를 안 들어서 편하다고 한다. 은주도 "여기선 친구들과 맘껏 수다를 떨기가 편해요"라고 말했다. 심지어 일부 초등학교에선 방과 후 학생들의 운동장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다칠 것을 걱정해서다. 아이들이 주인이어야 할 학교 운동장마저 어른들 걱정에 빼앗겨버린 셈이다.

부모가 아이를 보내는 경우도 있다. 생일잔치가 대표적이다. 서울 서초동에 사는 현웅(가명.13)이는 얼마 전 친구 생일 잔치에 갔다가 찜질방에 다녀 왔다. 집에서 잔치가 끝난 뒤 부모들이 아이들을 차에 태워 찜질방에 데려다 주고 나중에 데리러 왔다. "아파트에서 남자 아이들이 뛰어놀면 주변에서 시끄럽다고 해서 찜질방으로 놀러 가게 했다"는 얘기다.

# 괜찮아 vs 문제다

서울 신천동 재전(11)이 엄마는 재전이가 친구들과 찜질방에 가서 노는 것을 나쁘게 생각하지 않는다. 집 앞까지 차량 운행이 되는 데다 영화 관람실은 물론 수영장까지 갖추고 있어 한 번 가면 4시간 정도 재미있게 놀다 올 수 있기 때문이다. "직접 가보니 별다른 나쁜 점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찜질방에서 만난 초등학생들은 한결같이 부모의 허락을 받고 온다고 했다. 입장료나 간식비 등의 비용은 용돈을 모아 마련하는 경우도 있지만 보통은 부모님이 흔쾌히 준다는 것이다.

한편,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회사원 안수진(26)씨는 두 달 전 인천 연수동에 있는 대형 찜질방에서 초등학생들을 만났다. "그때가 자정이 가까운 시간이었는데 아이들이 놀고 있더라고요. 부모님과 함께 왔느냐고 물었더니 자기들끼리 왔다고 하더라고요. 이 늦은 시간까지 초등학교 5학년짜리 애들이 찜질방에 있다는 사실이 충격이었죠."

이에 대해 청소년위원회 전상혁 사무관은 "아직까지 찜질방은 청소년 유해 업소가 아닌 자유업으로 분류되어 있어 초등학생의 출입을 규제할 수 없다"며 "그렇지만 청소년 탈선의 온상이 될 가능성이 있어 오후 10시 이후엔 만 18세 이하 청소년이 보호자와 함께 오지 않거나 허락이 없을 경우 출입을 금지하려는 안을 마련 중"이라고 말했다. 공중위생법 시행규칙 중 영업자 준수 사항의 범위에 찜질방 업주를 포함한다는 내용이다. 현재 이 규칙은 법제처의 심의를 받고 있는 상태다.

조도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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