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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추 두포기의 배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서울에서는 전세 보증금 밖에 안되는 금액으로 아파트를 분양받아 이곳 성남시로 이사 온지도 벌써 6개월이나 되었다.
이사를 한후 제일 처음 찾아온 방문객은 신문구독 권유를 하러온 일간신문보급소 직원이었고 두번째의 방문객은 아파트단지 입구의 슈퍼마키트에서 개업 안내장을 돌리러 온 사람이었다.
무심코 받아든 그 안내장에는 모든 물건을 저렴한 가격에 신속하게 배달해준다는 문구가 있였고 그 아래에는 『세탁비누 한장도 배달해 드림니다』 라는 구절이 있었다.
단지내의 상가에는 식료품 가게가 나란히 붙어있는데 한쪽은 비교적젊은 여자가 가게를 하고있는것 같았으며 다른한편은 60대의 노부부가 꾸려가고 있었는데 그가게 아저씨의 안경쓰신모습에서 오랫동안 교육계에 계시다가 돌아가신나의 아버님의 모습을 느낄수가 있었다. 그래서인지 그 아저씨에게 나도 모르게 연민의 정을 느끼면서 콩나물 한줌, 파한뿌리를 사더라도 가급적 그 노부부의 가게로 가곤했다.
그러던 며칠전 어떤 젊은 여자가 현관 열쇠와 손지갑을 달랑달랑 들고 앞장을 선 몇걸음 뒤에 그아저씨가 통배추 2포기를 들고 따라가고 있는모습을 보고는 충격과 함께 마치 내 아버지가 당하고 있는듯한 심한 굴욕감마저 느끼고 말았다. 그 언젠가 맨션아파트단지에서 약국을 경영하시는 친지 한분이 심부름할 아이를 한사람 구해달라고 하시면서 『아파트여자들, 편한거 너무 좋아해요. 활명수 한병도 배달해줘야해요. 그렇지 않으면 운영이 안돼요』하던 말을 귓전으로 흘리면서 속마음으로 설마, 아무리 그럴라구 했던기억이 바싹 되살아나는 것이었다.
그것이 어느 일부의 일일거라고 생각하면서도 어느사인가 혹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물들어버리는것은 아닌가싶어 호흡을 크게하며 2포기의 배추를 안고 휘청이며 따라가던 내 아버지 연세쯤의그아저씨 뒷모습을 상기해본다. <경기도성남시하대원동산7의1 주공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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