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작가와 작품-이시영의 시 『들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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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이달의 시중에는 이시영씨의 『들국』 (무크지 「움직이는 시」 중),정규화씨의 『어머니』 (시와경제 2집),고정희씨의「서울사랑-침묵에 대하여』 (문예중앙 여름호)등이 평론가들의 주목을 받았다.
이시영씨의 『들국』은 9월 들판에 지천으로 피어있는 들국화에서 민중의 이미지를 끌어내고 있다.
6.25라해도 좋고 또 어떤 역사적 격랑이 지난간 곳이라고 해도 좋은 그 들판에 피어난 들국화-그것은 쓰러져간 민중과 또다시 살아남아야할 민중을 뜻한다.
이 시는 격랑이 빚은 비극에 비탄해하기 보다는 그 격랑을 이겨낸 민중의 끈질긴 힘과 깊은 곳에서부터 솟아나는 밝은 힘을 드러내려 한다.
「저 숨쉬는 9월의 하늘가에 마알갛게 고개 내밀다」·「그날의 산언덕에,따스한 돌담가에 하얀하얀 꽃으로 피었다」등의 들국에 대한 표현이 「가신 이들의 못다한 숨결」 「짧은 비명으로 숨져간」등과 대비되어 비극이 극복되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이씨에게 민중의 타고난 건강함에 대한 믿음은 뿌리깊음을 보여준다.
정규화씨의 『어머니』는 서울에서 살아가는 한사람의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연민이 가슴에 와 닿는다.
정직하게 살아 가려는 아들과 가난을 냉정하게 받아들이는 어머니의 사이에서 오가는 마음의 말들은 찌든 세상에서 흔히 발견되지않는 참다운 삶의 아름다움이다.
그 흔한 단풍놀이 한번 못간 어머니가 서울에 와서 창경원구경을 하고 아들에게 폐가 될까봐 휑하게 떠나는 모습이 쉽게 읽을수 있게 쓰여졌다.고정희씨의 『서울사랑-침묵에 대하여』는 서울이 많은것을 잊게하는 곳,환상의 도시로 보면서 그곳에서의 생활이 병들었음을말하고 있다.
이런 곳에서 벗어남, 환상이 아닌 참다운 삶의 곳으로서 고향을 찾는다. <도움말 주신분="윤재걸" 최동호>

<작가와의 대화>
장마를 예고하는 후덥지근한 며칠이 지나고 드디어 온몸을 끈적끈적하게 하는 습기를 가득 몰고 장마가 시작되는때 이시영시인을 만났다.
「창작과 비평」사의 편집장인 이씨를 만나는 것은 한 시인으로서의 이씨를 만나는 것임과 함께 한국문단의 현주소를 대하는 것이기도 하다.곧잘 표정이 굳어지는 그와의 만남의 분위기가 간간이 짓는 미소에도 불구하고 무겁다.
『최근 3∼4년간 시를 열심히 쓰지 못했습니다. 게으른 탓도 있겠지만 변화하는 시대에 창조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작고한 시인 김수영씨가 말한「시인은 일생동안 탐구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시인에 대한 경고가 절실하게 받아들여진다고 한다.
이씨는 70년대중반 활발한 시작활동을 하였다. 뿌리로서의 고향을 노래하는 시와 사회현실을 드러내는 시를 썼다.
시집 『만월』은 그 결정이다.「장사나 잘 되는지 몰라/흑석동 종점 주택은행 담을 낀 좌판에는 싯푸른 사과들…모자를 쓰고 서 있는 사내/어릴적 우리집서 글 배우며 골머슴살던/후꾸도가 아닐는지 몰라」(시 「후꾸도」 중) .
우리사회는 급격하게 재편되었다.고향을 떠나 뿌리없이 떠돌게된 많은 사람들. 이씨는 그들의 아픔을 그리면서 한국인이면 누구나 갖고있는 정서의 바탕,의식의 뿌리인 어머니의 땅 고향을 생각한다.
『너』 『이들』 『귀이야기』등 사회현실을 다룬 작품은 날카롭다.
그러나 스스로는 민중의 삶속에 뛰어들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비켜서 있었다고 말한다. 『나날이 변화되고 발전되고 생성되어가는 현실의 폭을 담아 그것을 창조적으로 노래하는것,또 역사의 생생한 창조적 움직임속에 문학을 세우는 것이 지금의 바람이고 각오입니다』
작품으로서의 완결성과 서정성을 잃지 않는 것도 이씨 시의 장점이다.『나의 꾸밈없는 노래이면서 우리들의 진정한 노래로 불려질 수 있는 시를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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