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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 해럴드 핀터의 작품세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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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영국 극작가 겸 시인 해럴드 핀터가 13일 런던 자택 현관 앞에서 지팡이를 짚고 서 있다. 그는 올해 75세다. [런던 AP=연합뉴스]

올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영국인 극작가 해럴드 핀터는 현재 영어권 국가를 통틀어 가장 유명한 극작가다. 그는 '고도를 기다리며'의 사뮈엘 베케트와 함께 부조리 극작가의 양대 산맥으로 불린다. 도발적인 소재와 사실적인 글쓰기, 그 안에 비밀스레 숨겨진 일상의 이면 등이 그의 작품을 특징 짓는다.

현존하는 극작가 중 가장 해석이 어렵다는 핀터의 작품 세계는 한마디로 '삶은 이중적이다'는 것이다. 작품 자체의 구조 또한 이중적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갈등 관계의 이면엔 역설적인 관계가 성립하곤 한다. 핀터의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자신의 적나라한 모습을 감추기 위해 남을 언어로 공격한다. 그러나 빈번히 등장하는 침묵과 생략의 언어로 그 공격성도 온전히 드러나지 않을 때가 많다. 핀터의 작품은 어느 한 편도 명확히 주제를 드러내지 않으며 늘 다의적으로 해석될 여지를 남긴다. 이러한 모호함이 오히려 전 세계 연출가들에게 매력으로 다가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는 1930년 10월 10일 런던 동부의 해크니에서 유대인 재단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초등학교 때 학교 연극 주연을 맡는 등 일찍이 연극에 자질을 보였다. 18세 때인 48년엔 왕립 연극 아카데미(the Royal Academy of Dramatic Art)에 입학했고, 이듬해 순회 극단에 입단했다. 이때부터 그는 10년간 데이비드 배런이란 예명으로 영국을 순회하며 배우로 활동했다.

배우로서 경력을 쌓았던 그는 27세인 57년 단막극 '방(The Room)'을 쓰며 본격적으로 극을 쓰기 시작했다. 이후 '생일파티(The Party)' '주방용 엘리베이터(The Dumb Waiter)' '관리인(The Caretaker)' 등의 작품으로 인정받는다.

핀터는 셰익스피어상, 유럽문화상, 피란델로상, 데이비드 코언 영국 문학상을 받았고 런던의 퀸 메리 대학의 명예 교수이기도 하다. 로렌스 올리비에 특별상과 몰리에르 데도뇌르도 받았다. 바르셀로나와 더블린에선 '핀터 페스티벌'이 열리고 있고, 템파대학에서는 매년 'The Pinter Review'가 출판되고 있다. 핀터는 역사학자이며 귀족인 안토니아 프레이저와 결혼해 현재 런던에서 살고 있다.

국내에서도 핀터는 연극인과 지식인 사이에 가장 인정받는 작가로 손꼽혀 왔다. 30년 전 연극 '티타임의 정사(The Lover)'로 처음 소개됐으나 작품의 난해함으로 인해 일반인에게 다소 낯선 존재였다. 2002년부터 매년 '핀터 페스티벌'이 열리면서 조금씩 인지도를 넓혀가고 있다. 올해도 9월 한 달간 '콜렉션' '귀향' '핫 하우스' '배신' 등 네 작품이 대학로 블랙박스 시어터에서 올려진 바 있다. '콜렉션'을 연출한 송현종(극단 가변 대표)씨는 "60년대 쓰인 작품이 21세기 상황을 적확하게 지적하는 것 같아 놀라울 때가 많았다. 무엇보다 정치적으로 격변을 경험한 탓에 정치 게임에 이미 익숙한 한국인들에게 그의 작품은 새로운 의미로 다가가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2002년엔 9권의 '헤럴드 핀터 전집'(평민사)이 출간된 바 있다.

*** 수상 기대 고은씨 자택 취재진 몰려

○…한국인 최초로 노벨문학상 수상이 기대됐던 시인 고은(72)씨 자택에는 실망감이 감돌았다. 고은 시인은 13일 발표 몇 시간 전부터 부인인 중앙대 안성캠퍼스 영문학과장 이상화(58) 교수와 함께 경기도 안성시 공도면 마정리의 자택에 계속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부인은 "남편은 현재 출타 중이며, 발표 직전에 돌아온다"며 취재진의 출입을 막았다. 이날 고은씨 자택 앞은 AP통신 등 국내외 70여 명의 기자와 30여 대의 취재 차량이 몰려들어 북새통을 이뤘다.

조우석 문화전문기자, 최민우.손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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