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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영희 칼럼

중국 경제정책, 기조 바뀌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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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김영희
김영희 기자 중앙일보 고문

계획경제를 규획(規劃)경제로 바꾼다. 선부론(先富論)을 균부론(均富論)으로 바꾼다.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의 주도로 열린 중국 공산당 16기 중앙위원회 5차 전체회의(5중전회)에서 채택된 중국의 11차 5개년 경제사회개발계획의 핵심이다. 전 세계 중국 전문가들이 고개를 갸우뚱한다. 계획과 규획이 어떻게 다른가. 선부론에서 균부론으로 목표를 수정한다면 1978년 이후 중국 경제를 연평균 9% 이상 성장시킨 덩샤오핑(鄧小平)의 개혁 노선과 결별하는 것인가.

선부론과 균부론의 차이는 분명하다. 소수의 사람들이 먼저 부자가 되고 그들이 모델이 되어 전국적으로 부자가 늘어나게 한다는 것이 덩샤오핑의 선부론이다. 지역적으로도 연해(沿海) 지역과 남부가 먼저 개발되고 거기서 얻는 힘으로 동북부와 서부의 내륙지역을 개발한다는 구상이다. 여기서 불가피하게 생기는 것이 산업 간, 도농(都農) 간, 업종 간 심각한 빈부의 격차다. 그래서 고루 잘사는 균부론의 조화사회(調和社會)가 전면으로 나온 것이다. 우리식 표현으로 하면 성장 위주가 분배 위주 정책으로 바뀐다는 의미다.

이런 해석이 정확하다면 예삿일이 아니다. 빈부 격차가 없는 조화로운 사회의 실현을 위해 성장보다 분배에 중점을 두는 경제.사회정책으로 연평균 9%대의 성장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중국은 2050년까지는 민주화되고 문명된(civilized) 사회주의 국가의 이상을 실현한다는 야심적인 목표를 갖고 있다. 이 목표에 이르는 로드맵에 따르면 11차 5개년 계획이 끝나는 2010년에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은 지금의 1조1000억 달러의 두 배로 는다. 2020년에는 다시 그 두 배가 되어 2040년이 되면 중국의 GDP는 미국과 비슷한 수준에 이른다는 장기 구상이다.

정말 균부로 가겠다는 것인가. 규획경제라는 신조어를 보면 그게 아니다. 과거 소련이 그랬듯이 중국의 계획경제는 중앙의 괴수(怪獸)와 같은 방대한 기구에 의해 계획되고 추진됐다. 그러나 '계획'은 21세기에는 맞지 않는 낡은 개념이다. 계획이라는 말로 제약되는 경제정책으로는 2040년까지 미국을 따라잡고 2050년까지 민주화되고 문명된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하다는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다는 결론에 이른 것 같다. 계획의 이미지를 벗자고 규획이라는 신조어를 쓴 것으로 보인다. 규획은 계획은 계획이지만 한층 느슨한 계획이라는 것이 중국 언론의 유권적 해석이다.

중국 지도부와 전문가들 사이에는 지난 몇 년 동안 중국 경제의 불균형 발전의 해결방법을 놓고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다. 소득 격차를 나타내는 지니계수가 지난해 경계(警戒) 라인인 0.40을 돌파하여 혼란 발생 라인이라는 0.47에 이른 것이 중국 지도부에 위기의식을 자극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과 미국 사이에 이미 시작된 동북아시아에서의 주도권 경쟁, 좀 더 직설적으로 말하면 패권경쟁으로 중국 경제의 지속적인 고도성장은 절대명제다. 경제가 커야 정치적인 지위도 확보된다. 지금 13억 국민을 고루 잘살게 하는 정책으로는 고루 못사는 결과만 가져온다. 미국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 그래서 규획경제를 실질내용으로 하고, 소수가 먼저 잘살기에서 다수가 고루 잘살기로 목표를 바꾸는 것을 명분으로 하는 절충안이 나온 것으로 보인다.

중국 경제에 대한 선진국들의 관심은 정치 개혁 없이 언제까지 경제의 고도성장이 지속될 수 있을 것인가에 집중된다. 공산당의 일당 지배 아래 시장경제를 꽃피운다는 철골상춘(鐵骨賞春)의 수명에 대한 거시적 관심이다. 개혁.개방시대에 출생한 5세대 중국인들의 세상이 되면 정치 개혁 없는 경제 성장은 한계를 드러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그러나 우리는 중국 경제정책의 미세한 조정이 한국 경제에 미칠 영향을 주시해야 한다. 한.중 무역은 올해 1000억 달러를 돌파하고, 중국에 대한 투자는 290억 달러(중국 측 통계)를 넘어섰다. 한국과 중국의 경제의존도가 그만큼 높다. 선부론과 균부론, 계획경제와 규획경제의 미묘한 차이가 2050년까지 중국 경제 성장의 대장정에 어떻게 투영될 것인가 주의 깊게 살필 필요가 있다.

김영희 국제문제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