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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와 이승만대통령〈6〉|적군, 여유있게 전주를 노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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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배탈은 나을 생각을 않고 있다. 밤이면 더욱 심해져 화장실을 들락거리다 날을 밝힌다.
대통령까지 설사병에 걸려 밤새도록 두 사람이 번갈아 화장실 출입을 했다.
20일 저녁, 적군은 이리에서 전주로 향하고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 태풍으로 오끼나와에서 B-29가 출격을 못해 적군은 여유만만하게 진군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와의 언쟁 진저리>
현지의 경찰은 더도 말고 곡사포4문만 보내달라고 애원을 했다. 이리∼전주방면은 미군의 방어선이었지만 사단병력이 도착하지 않아 그들 역시 열세인데다 서해안을 막고 있는 해병대에 대한 지원도 급한 형편이었다.
대통령은 정일권 장군을 불러 방법이 없겠느냐고 물었다. 정 장군은 작전에 관한 한 미군측이 한치의 양보도 하지 않으니 어쩔 도리가 없다고 했다. 신국방도『미국사람들하고 말싸움하는데 이젠 진저리가 난다』 며 『그 사람들도 우리 땅에서 피를 흘리고있으니 탓할 수만도 없다』 고 푸념을 했다.
미국은 대전주위에 산개했던 병력을 한곳에 집결시키고 있었다. 대전철수 방침이 굳어진 것 같다.
안동에 있던 미군사단병력이 우리국군과 교체되었다. 미국측은 동쪽에는 산악이 많아 탱크와 중화기의 사용이 부적합하고 지리에 익숙지 않으므로 한국군이 맡아야하고 대전 이서의 평야지대는 기갑과 포부대의 용범이 수월하므로 자신들이 맡아야한다는 것이었다.
21일 아침, 국방장관은 부산에 도착한 미군 후속병력과 최신 장비들이 광주로 공수되었다고 알려왔다. 아직도 구식 총을 들고 싸우는 우리아이들 생각을 하면 너무너무 부럽다.
「무초」 대사는 대통령의 서한을 「트루먼」대통령에게 전달했다고 보고하고 한국전에 관한「트루먼」대통령의 연설문 전문 (전문) 을 전달했다.

<날씨 활짝개길 축원>
푸른 하늘이 보이기 시작한다. 우리나라가 태풍의 꼬리부분에 걸치게되어 간간이 비를 뿌렸지만 하늘이 개기 시작한다. 어서 빨리 아군의 비행기가 출격할 수 있도록 활짝 개기를 빌었다.
조 지사가 와서 국민궐기대회가 10시에 있을 것이라고 보고하고 연사로「무초」대사·유엔대표·「워커」장군을 대신한 미군장성이 나오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대통령은 국민의 자주궐기대회인만큼 자신은 국가원수가 아닌 시민의 한사람으로 참석하겠다고 통고했다.
하오4시, 미군이 대전에서 철수한다는 정식통보를 받았다. 중부전선에서는 적군이 청주에서 정읍까지 내려왔고 동부전선에서도 협공으로 안동을 향해 빠른 속도로 쳐들어오고 있었다. 대통령은 정일권 장군에게 이 정보를 확인했다.
정 장군은 금강에서 미군들이 민간인으로 위장한 북괴군 게릴라들로부터 배후기습을 받아 수백명이 무기를 버리고 달아났다는 것도 함께 보고했다.
미군들이 버리고 간 그 무기들을 우리아이들이 주웠더라면 하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떠올랐다. 「워커」장군은 민간인복을 입어놓으면 누가 누군지 구별할 길이 없다고 실토하고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총질을 할 수도 없다는 입장을 설명했다. 「워커」장군은 처음으로 대통령에게 자기네 병사들이 아직 게릴라전에는 미숙하다고 자백했다.

<대통령 운전난폭>
대전에 침입한 공산군은 차량이 지나 갈만한 곳에는 모두 돌을 쌓아 벽을 쳐 아군의 퇴로를 차단했다. 대전을 사수하려던 「딘」소장이 실종 된데다 피난민을 가장한 북괴군의 교란작전으로 미군은 사면초가였다.
보고를 다 받고 난 대통령 치솟는 분노를 참으려는 듯 빠른 걸음으로 방안을 왔다 갔다 하다 갑자기 차고로 달려나갔다. 나는 아픈 배를 움켜쥐고 급히 뒤따라나가 겨우 차에 올랐다.
대통령은 직접 차를 몰아 「무초」대사의 숙소로 달렸다. 평소에도 대통령의 운전솜씨는 사나왔다. 나는 겁이나 스피드를 좀 줄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워낙 화난 얼굴을 하고 있어 두 다리에 힘을 주고 손잡이만 잔뜩 움켜쥐고 있어야했다.
옛날 미국에서 독립운동을 할 때 대통령은 워싱턴의 프레스클럽에서 연설을 할 기회가 있었다. 뉴욕에서 워싱턴까지 가려면 시간이 급했다.
대통령은 헤드라이트를 켠 채 신호를 무시하고 논스톱으로 곡예운전을 했다. 2대의 기동순찰 오토바이가 추적을 했지만 대통령의 스피드를 따라잡지 못했다.
그때는 어찌나 혼이 났는지 당장 이 양반하고 결별해야겠다는 생각까지 했다. 프레스클럽에는 정시에 도착했다. 대통령은 연설을 시작했고 입구에는 2명의 기동순찰대원이 연설이 끝날 때까지 지켜서 있었다.

<한달째 맨손으로>
연설은 감동적이었다. 수십번의 박수가 터졌다. 감시 경찰관은 대통령의 연설에 감동, 따라서 박수를 치는 것을 나는 보았다.
연설이 끝나고 대통령이 참석자들과 악수를 나누는 사이 경찰관은 나에게 다가와 속사였다. 『기동경찰 20년에 내가 따라잡지 못한 단 한명의 교통위반자는 당신 남편뿐이오. 일찍 천당에 안가시려거든 부인이 조심을 시키시오.』
그들은 씩 웃고는 V자를 그려 보이며 되돌아갔다. 나는 대통령에게서 운전을 배웠다. 그러나 나의 운전은 아주 고왔다. 그래서 대통령은 비단처럼 부드럽게 운전을 한다하여 나를 「실키 (silky) 드라이버」라고 별명을 붙였다.
경호원도 없이 손수 운전을 하고 나타난 대통령을 보고「무초」대사는 무척 당황했다.
대통령은 미군들이 한국의 지형을 모르는 것이 큰 약점이라고 지적하고 우리군경을 북괴군과 구별조차 못하는 형편이니 미군부대에 한국군을 배속시켜 함께 싸우는 것이 좋겠다고 제의했다.
아니면 차라리 당신들의 무기와 장비의 일부만이라도 넘겨 달라고 했다. 「무초」대사는 무기가 넉넉지 못해 우선적으로 미군에게 공급되고 있다며 한·미군 혼성편성문제는 검토해보겠다고 대답했다.
청주는 적의 보병무대에 점령당했다. 그쪽의 주요 방어선은 경찰이 맡고 있었는데 더이상 버틸 총과 탄약이 없었다. 기막히게도 우리 아들들은 아직 맨손으로 싸우고 있는 것이다.

<오랜만의 승전보>
7월22일, 밤새 억수같이 퍼붓던 비는 멎었다. 일기예보는 하루쯤 더 비가 오락가락 하겠다고 했다.
국방장관은 이날 아침 두 가지 반가운 소식을 가져왔다. 그는 포항 앞 바다에 기갑사단읕 실은 수송선단이 정박해있고 부산항에는 무기와 탄약을 실은 8척의 배가 들어왔으나 지금은 풍랑으로 상륙을 못하고 있다고 했다.
또 임실이 아군에 의해 탈환됐다는 것이다. 얼마만에 들어보는 승전보 (승전보) 인가!〈정리=고정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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