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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만 익혀도 '석·박사' 인증 … 반퇴시대 재취업 돕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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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이기권

대기업 반도체사업부에서 일하던 박모(57)씨는 2013년 9월 정년퇴직했다. 그는 정년이 다가오는데도 처음엔 느긋했다. 부동산 임대수입이 든든한 배경이 돼 줄 걸로 믿었다. 그러다 막상 정년을 1년 앞두고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실직자로 전락한다는 공포가 엄습했다. 이랬던 박씨가 정년퇴직을 하자마자 연성회로기판(FPCB)을 만드는 중소기업 상무이사로 재취업했다. 비결은 회사의 경력 관리에 있었다. 이 회사는 박씨의 경력과 장단점을 꾸준히 업데이트하며 관리했다. 정년이 다가오자 회사 내 경력관리센터는 그에게 이 자료를 바탕으로 퇴직 후 전직을 위한 컨설팅을 했다. 이게 박씨가 공백 없이 다른 회사로 옮겨 일할 수 있게 된 비결이다.

[창간 50년 연중기획 반퇴 시대]
현장 경력 따라 학위 같은 자격증
기계·SW 등 10개 분야 시스템 구축
"학력보다 능력 위주로 사회 재편"

 정부가 이런 형태의 생애 경력관리시스템 구축을 국정과제로 선정해 추진키로 했다. 일반 기업에서 운영하는 경력관리센터의 국가 확장판이다. 국가역량체계(NQF)로 불리는 이 시스템은 학교 졸업장 외에 개인이 가진 다양한 현장 직무능력을 차곡차곡 모은다. 이 자료를 바탕으로 근로자 개인의 직무능력을 국가자격증으로 따져 산업기사 수준인지, 기능사 수준인지를 가늠해 자격을 인정한다. 학위로 따지면 석사급인지, 박사급인지 여부도 치환해 준다. 교육·훈련·현장 경력·자격·학위가 연계 인정되는 체계다. 개인 이력서가 아니라 국가가 시스템으로 그의 경력과 능력을 공인하는 셈이어서 재취업이 쉬워진다. 유럽훈련재단(ETF)에 따르면 155개국에서 이런 형태의 NQF를 시행하고 있다.

 이 제도가 시행되면 경력만 잘 쌓고 관리해도 박사 학위급 대우를 받게 된다. 국가기술자격도 주어진다. 예컨대 박사 학위가 없어도 해당 분야의 경력이 학위 수여자에 버금가거나 능가한다고 판단되면 교수로 취업할 수 있다. 독일이나 영국·스위스처럼 학사 학위를 가진 마이스터교수가 박사 학위를 수여할 수 있다.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은 “이 제도가 본궤도에 오르면 책상에 앉아 연구하는 이론형보다 현장에 적용되는 실용학문이 뜨고 교육체계도 능력 위주로 재편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재취업이나 전직이 쉬워져 노동 이동성이 강화되며, 나이가 아니라 능력에 맞게 대우를 받는 체제가 확산돼 반퇴시대에 꼭 필요한 제도”라고 덧붙였다.

 정부는 우선 기계·소프트웨어 같은 10개 분야에 NQF를 구축해 올해 안에 시범 실시하고, 이를 바탕으로 문제점을 보완해 2017년 제도화하기로 했다. 공공기관에는 올해부터 이 시스템을 적용키로 했다. 이에 따라 공공기관은 올해부터 채용일정과 직군·직무별 업무 내용, 필요한 역량, 채용 기준을 채용하기 3개월 내지 1년 전에 공개해야 한다. 취업준비생이 자신이 지원할 직무에 맞는 경력이나 자격을 갖추도록 하기 위해서다.

공공기관에 취업하는 순간부터 경력 관리도 받게 된다. 직무와 상관없이 한꺼번에 뽑아 여기저기 배치하는 채용시험이 직무능력검사로 바뀐다는 얘기다. 또 취약계층에는 경력과 훈련 실적, 자격 등을 고려해 고용부 산하 고용복지센터에서 직접 취업을 알선키로 했다.

김기찬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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