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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부럽잖은 심산계곡|여름휴가에 가족끼리 가볼만한 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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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장상섭(52·한성대학강사)
여름휴가는 바다에서 보내야한다는 고정관념들이 있다. 산을 모르고 산에서 여름을 보내보지 못한 사람들의 생각이다. 나는 여름엔 지리산노고단으로 간다. 스웨터와 파커까지 가지고 간다. 밤이면 한여름이라도 여간 춥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족과 같이 갈 때는 그렇게 높은 곳은 좀 무리한 일이다. 그많은 짐을 지고 그렇게 높은 곳에 올라가기란 너무 힘들 것이니까. 이왕 지리산으로 가겠다면 반야봉뒤의 뱀사골을 권하고싶다.
가족들이 올라 갈 만한 곳에 텐트를 치고 사나흘을 보내면 찌는 듯한 더위를 완전히 잊을수 있을 것이다.
하늘을 뒤덮는 녹음 밑에서, 암벽에서 떨어져 흐르는 계곡물이 물보라를 피워 올리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신선이 부럽지 않다. 갑자기 퍼붓는 폭우에 대비해서 계곡에서 높은 단구를 택해 자리를 잡는 것이 좋다.
이 계곡은 열서너번 물을 건너서 올라가야 하니 될 수 있는 대로 계곡 어귀 부근을 택하는 것이 좋다.
교통편은 남원에서 반선으로 들어가는 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밤은 추우니 스웨터 등을 꼭 준비해 갈 것.
물살이 세니 목욕하는데 안전한 지점을 잘 골라야 한다.
역시 온 가족이 함께 보내는 곳을 바란다면 영동군의 물한리를 권하고 싶다. 황간에서 남쪽으로 깊숙이 내려가서 민주지산밑에서 끝나는 물한리는 사람이 많이 몰려들지 않는 한가한 계곡이다.
영동·황간·금천에서 물한리로 들어가는 버스가 있다. 물한리 종점에서 조금만 더 올라가면 황룡사가 울창한 숲속에 있다.
그 부근 나무 그늘에 텐트를 치면 더위를 잊고 며칠을 보낼 수 있다. 사람은 많이 몰려들지 않지만 깊숙한 계곡에 흐르는 물소리, 나뭇가지를 흔들며 지나가는 바람소리, 그리고 쉬지 않고 울어대는 매미소리 속에 파묻힐 수 있다. 물한리라는 이름의 뜻을 알 것도 같은 속세를 떠난 선비가 살만한 곳이다.
황학산 서록을 남쪽으로 들어와 앉은 마을은 동남쪽이 모두 높은 산들로 에워싸여 있다. 이부근 봉우리로 올라가서 돌아보는 것도 맛이 있다.
동남쪽계곡으로 해서 올라가면 속칭 삼도봉이란 봉우리가 있다. 이 봉우리의 동쪽은 경북 지례지방이고, 서북쪽은 충북, 서남쪽은 전북땅이기 때문에 삼도봉이라 불리는 것이다.
거기에서 서쪽으로 능선을 따라 가다보면 천년풍우에 씻겨 마멸돼 가는 마애석불을 만날 것이다. 그 높은 곳에 새겨진 불상을 보며 옛사람의 신앙심을 헤아려 보는 것도 좋은 공부가 되지 않을까. 다시 능선을 따라 서쪽으로 오다 우뚝 솟은 산정에 올라서면 그것이 바로 민주지산이다.
그 위에서 남남서쪽으로 보이는 높은 산이 이른바 북덕유산이다. 그밑으로 검푸르게 보이는 계곡이 무주구천동이다. 거기에서 서남쪽으로 내려서면 설천면이되며 나제통문도 바로 지척에 있다.
정상에서 동쪽으로 내려오면 물한리이니 하루쯤은 여유있게 이 산행을 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각종 산나물이나 더덕이 많이 나는 곳이 이곳이다. 교통편도 좋고 산에 오르면 삼도를 눈아래 바라볼 수 있는 이곳도 가볼만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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