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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얼빠진 정부와 정치권이 연말정산 분노 불렀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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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연초부터 불거진 ‘연말정산 파문’에 정부와 여당이 긴급 당정협의를 갖고 개선 대책을 마련했다고 한다. 올해 연말정산에서 세금을 돌려받기는커녕 토해내게 된 사람들에게 추가 납부 금액을 나눠서 내도록 했다. 세 부담이 늘어난 다자녀가구와 독신근로자에 대한 세액공제를 확대했다. 노후 대비를 위한 연금보험료에 대한 세제 혜택을 늘리겠다고도 했다. 당정은 여기다 야당과의 협의를 거쳐 보완 대책을 올해 연말 정산분에 소급 적용하는 방안까지 추진하겠다고 했다. ‘연말정산 분노’의 여론에 밀려 정치권이 입법 원칙까지 내팽개친 채 총력 수습에 나서는 모습이다.

 사실 이번 연말정산 파문은 정부의 무성의와 정치권의 무신경이 합작해 만들어낸 인재나 다름없다. 정부와 정치권 모두 세제 개편으로 일부 소득계층의 세 부담이 늘어나고, 연말정산 방식의 변경으로 환급액이 줄어들거나 오히려 추가 납부를 할 수도 있다는 점을 국민들에게 소상하게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부는 세 부담이 크게 늘지 않는다며 대국민 설득에 성의를 다하지 않았고, 정치권은 그런 내용의 세제개편안을 꼼꼼하게 신경 쓰지 않고 덜컥 통과시켰다. 사정이 이런데도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행태는 그렇지 않아도 울화통이 터지는 국민들을 두 번 화나게 하는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올해 연말정산이 분노의 여론으로 확산된 데는 두 가지 요인이 겹쳐졌다. 하나는 다달이 떼는 원천징수액을 줄이는 방식으로 간이세액표를 바꾸는 바람에 연말정산에서 환급액이 줄거나 추가 납부를 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진 점이다. 그러나 이 대목은 국민들도 흥분을 가라앉히고 지난해 낸 세금 총액과 올해 연말정산에서 확정된 총 납부세액을 차분히 비교해 볼 필요가 있다. 세금을 먼저 많이 떼고 나중에 더 돌려준다고 해서 연간 부담하는 세금 총액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정작 정부와 정치권의 무성의와 무신경을 질책해야 할 대목은 세제 지원을 해줘도 시원찮을 일부 계층의 세 부담이 늘어났다는 사실이다. ‘저출산과 고령화’ 대책이 초미의 국가적 과제임에도 다자녀가구에 대한 세액공제가 축소되고 양육비 공제와 출산 공제가 없어졌다. 또 중산층의 노후 대비를 위한 연금저축에 대한 소득공제가 세액공제로 전환돼 환급액이 줄어들었다.

 당정이 이런 불합리한 세제를 시급히 바로잡기로 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다만 연말정산 보완 대책의 소급 적용은 법체계의 안정성과 소급입법 금지 원칙을 감안해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국민의 분노를 가라앉힌다며 새로운 포퓰리즘의 불씨를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와 정치권은 이번 ‘연말정산 파문’을 계기로 국민이 내는 세금 문제를 결코 함부로 다루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명심하기 바란다. 세금 무서운 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