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자유와 법치를 돌아보게 한 이석기 판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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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내란 선동은 분명히 있었다. 이를 내란 음모로 보기는 어렵다.’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에 대한 사법부의 최종 판단이다. 이 전 의원이 재판에 넘겨진 지 1년3개월 만에 나온 결과다. 대법원은 어제 내란 음모·선동 및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된 이석기 전 의원의 상고심에서 징역 9년과 자격정지 7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앞서 1심은 내란 음모·선동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모두 유죄로 인정해 징역 12년과 자격정지 10년을 선고했다. 대법원은 이 전 의원이 전쟁이 발발할 것을 예상하고 회합 참석자에게 남한 혁명을 책임지는 세력으로서 국가시설 파괴 등 구체적인 실행 행위를 촉구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1심과 달리 이 전 의원이 조직한 것으로 알려진 혁명조직(RO)의 실체가 충분히 증명되지 않고 음모 역시 이를 입증할 만한 증거가 약하다며 내란 음모 혐의를 무죄로 판단했다.

 지난해 12월 헌법재판소는 법무부 청구를 받아들여 통진당 해산을 결정하고 이 전 의원 등 통진당 소속 국회의원 5명에게 의원직 상실을 선고했다. 이번 판결은 이 전 의원의 활동을 사실상 내란 음모로 본 헌재 결정과 충돌하는 측면이 없지 않다. 하지만 사안의 핵심은 바뀌지 않았다. 대법원 역시 국회의원이 체제 전복을 목적으로 통신·유류 시설 파괴를 촉구하는 등 내란 선동을 했으며, 이는 용납될 수 없는 범죄라는 점을 명백히 했기 때문이다. 1심보다 감형은 됐지만 징역 9년이라는 중형이 선고된 것은 내란 선동의 위험성을 중대하게 본 결과다.

 사법부의 최종 판단이 우리 사회의 보·혁 갈등을 촉발시키는 빌미가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자유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세력을 용인해선 안 된다는 의미와 함께, 아무리 중대한 혐의라도 법과 증거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는 점을 동시에 던진 판결이기 때문이다. 건전한 진보세력까지 매도하는 극단적인 목소리 역시 경계해야 한다. 헌재 결정과 대법원 판결 모두를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우리 사회의 자유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지키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