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바꾸는 나노 물질 만들려 학교 떠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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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교수직을 떠나 LG화학으로 옮기는 이진규 화학부 교수가 21일 재료화학실험실을 찾았다. 이 교수는 실험실 규정에 따라 보안경을 썼다. 김성룡 기자

서울대 교수직은 선망의 대상이다. 그런 자리를 떠나 기업체 연구직으로 옮기는 사람이 있다. 이진규(52) 서울대 화학부 교수다. <중앙일보 1월21일자 B1면>

그를 놓고 잔잔한 파장이 이어지고 있다. 서울대 교수로 17년을 보냈고, 앞으로도 13년간 보장된 ‘명예’와 ‘기득권’을 과감히 내려놓는 도전은 흔치 않은 까닭이다.

 전날 전화 인터뷰에 이어 21일 연구실에서 만난 이 교수는 짐을 싸느라 분주했다. 당장 다음 주에 서울 강남 집을 떠나 대전으로 이사를 한다. 새로운 직장이 될 LG화학의 중앙연구소가 자리 잡은 곳이다. “아내도 함께 간다”고 했다. 얼굴에선 떠나는 아쉬움도 묻어났다.

 당초 이 교수는 "종신 교수라고 놀고 먹는 특권이 보장된 편안한 자리가 아니다”며 “원하는 연구를 더 잘하고 싶어 새로운 선택을 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야기가 깊어지자 숨어있던 얘기를 꺼냈다. 이 교수는 “세상을 바꾸는 나노 물질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그게 기업행을 택한 결정적 계기라는 것이다.

 그의 얘기는 ‘갈증’에서 시작된다. 이 교수는 ‘나노’ 분야의 세계적 석학이다. 밀가루보다 몇 백배 작은 물질로 신소재를 만드는 연구를 한다. 이렇게 탄생한 기술로 상품을 만들어 세상에 내놓고 싶었다. 하지만 대학에선 불가능했다.

이 교수는 “산학협력도 굉장히 많이 해봤지만, 특허 내고 사업화해서 상품을 출시하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지난 2006년이었다. 학생 한 명과 함께 ‘양자점(퀀텀도트·Quantum dot)’을 대량으로 만드는 기술을 개발해 특허를 냈다. 양자점이란 전압을 가하면 스스로 빛을 내는 작은 반도체 결정을 말한다. TV 디스플레이 등에 쓰인다. 이 교수는 “산학협력단이 기술투자를 하면서 벤처기업까지 만들었는데 기술이 너무 앞섰는지 상용화로 이어지진 않았다”고 했다.

그는 또 “대학에선 사업화를 위해 추가로 학생을 투입하고 재원을 마련하고, 공정을 최적화하고 이런 게 쉽지 않아 한계를 느꼈다”고 말했다.

 그러다 안식년이던 2013년 유진녕 LG화학 기술연구원장(사장)을 만나 연구소에서 ‘기업 경험’을 했다. 내면에 숨어 있던 ‘꿈’이 더욱 꿈틀거렸다. 결국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사실 가지 않는 길을 가는 ‘기업가 정신’이 일찍부터 그의 DNA에 내재돼 있었는 지도 모른다. 1997년 귀국하는 비행기 안이었다. “한국의 은사들이 하던 연구는 따라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도전의 긴 여정은 이미 이 때부터 시작된 셈이었다.

 그에게도 두려움은 있다. “기업 연구는 규모 면에서 대학과 차원이 다르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교수는 새로운 도전을 통해 ‘영화 속 상상’을 현실로 만들고 싶어한다. ‘자석 나노 입자’도 그의 전매 특허다. “작은 자석 알갱이를 몸에 넣에 적혈구처럼 떠다니며 독성 물질을 빼낼 수 있다”고 했다.

 그는 학교에 남겨둘 젊은이들에게도 꿈을 얘기했다. “워낙 변화가 많은 게 요즘 세상이다. 지금 뜨는 분야를 쫓아다니는 것보다 자신이 재미를 느끼는 일을 선택하라”고 했다. 50대 석학의 ‘젊은 생각’. 이것이 바로 그를 모험으로 인도한 이정표였다.

글=김준술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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