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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핑몰 연말정산 한파 … 쏟아지는 주문 취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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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직장인 조예지(25·여)씨는 지난주 온라인몰에서 세일할 때 산 20만원짜리 겨울 코트를 배송도 받기 전에 주문 취소했다. 올해부터 연말정산 제도가 바뀌면서 코트 값으로 쓰려 했던 ‘13월의 월급’이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조씨는 “지난해에는 월급의 10% 정도를 환급받아서 설빔도 내 손으로 마련했는데, 올해는 모의 정산을 해보니 택시비 수준이었다”며 “세일하는 옷 하나 못 사 입는데 돈 벌어서 뭐하나 싶다”고 말했다.

 가뜩이나 위축된 소비심리를 ‘연말정산 후폭풍’이 꽁꽁 얼리고 있다. 연말정산 환급액을 지난해보다 훨씬 적게 받거나 오히려 세금을 더 내게 된 직장인이 이미 구입한 상품까지 환불하는 등 주머니를 닫으면서 자영업자까지 후폭풍에 말려들고 있다.

 패션 전문 쇼핑몰 아이스타일24의 경우 지난 주말 야상·패딩점퍼나 모직코트, 무스탕처럼 15만원이 넘는 겨울 겉옷 제품의 주문 취소율이 전주에 비해 30%가 늘었다. 대신 저가·간절기 제품의 판매가 증가했다. 국세청 연말정산간소화서비스 사이트에서 소득공제 자료 이용이 시작된 15일부터 20일까지 1만원대 제품은 61%, 5만원 미만 제품은 45% 판매율이 늘었다. 재킷이나 니트 같은 간절기 제품 판매량도 각각 65%, 53%로 급증했다.

 아이스타일24 여성의류 담당 진선영 상품기획자는 “지난 주말을 기점으로 고가 의류 취소율이 급격히 늘어난 것은 연말정산 환급액을 기대하고 구입했다가 취소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설 대목을 기대했던 이 쇼핑몰은 갑작스러운 소비 위축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다음달 14일까지 르샵·코데즈컴바인 같은 여성복 브랜드를 최대 95%까지 할인해 팔기로 했다.

 주 고객인 직장인의 여윳돈이 사라지면서 자영업자도 연쇄 타격을 입고 있다. 가산디지털단지 부근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이모(31)씨는 “저녁 손님이 최근 지난해 이맘때의 반으로 줄었다”고 하소연했다. 이씨는 “가뜩이나 불황 때문에 지난해 말부터 저녁 손님이 주는 추세였는데, 며칠 전부터 연말정산 세금 폭탄 이야기까지 나오자 손님이 확 줄었다”고 말했다.

 홈쇼핑·대형마트 같은 대형업체의 경우 아직 연말정산 후폭풍의 영향이 나타나지 않았다. GS샵이나 이마트의 경우 지난 주말 대형 가전 매출이나 주문 취소율을 분석한 결과 지난해 같은 기간이나 전주와 큰 차이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아직도 연말정산을 하고 있는 회사가 많은 만큼 앞으로가 더 걱정이라는 것이 유통업계의 중론이다.

 실제로 연말정산 결과를 보고 소비를 결정하겠다는 직장인이 적지 않다. 회사원 박모(32)씨는 “연말정산 환급액은 왠지 공돈 같아서 남편 눈치 안 보고 핸드백을 사려고 했는데 올해는 오히려 세금을 더 내야 할 것 같아 핸드백도 못 사겠다”고 속상해 했다.

 2월 설 대목을 앞두고 소비 심리가 얼어붙는 것에 대한 우려도 크다. 대형마트 관계자는 “2월은 설 대목이라 상여금이 나올 텐데 소비자들이 이 돈을 설 소비에 쓰지 못하고 연말정산 이후 더 나온 세금 내는 데 쓸 것 같다”며 우려했다. 실제로 서울 명동에서 만난 한 40대 남성 직장인은 “정산 결과가 안 좋으면 설 대목에 돈 쓸 일이 걱정”이라고 말했다. 직장인 김슬기(35)씨는 “지난해는 10여만원을 돌려받아서 외식도 했었는데, 어젯밤 정산해 보니 올해는 40만원을 더 내야 하더라”며 “나는 아니겠지, 했는데 막막하다. 앞으로 뭘 줄이든 줄여야겠다”고 말했다. 홈쇼핑 업계 관계자는 “2월은 연말정산 환급과 성과급이 있어 소비자의 씀씀이가 큰 편이었는데 올해는 경기가 좋지 않은 데다 연말정산 환급까지 줄어서 매출 하락으로 이어질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구희령·이현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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