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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연설하는데 뒤에서 눈감은 하원의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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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의사당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새해 국정연설 도중 조 바이든 부통령(상원의장 겸직)은 기립해 박수 친 반면, 야당인 공화당의 존 베이너 하원의장은 자리에 그대로 앉아 눈을 감고 있다. 이날 오바마 대통령이 부자 증세와 중산층 살리기를 강조하자 친기업 성향의 공화당 의원들은 박수에 불참했다. [워싱턴 AP=뉴시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여소야대 정국에서 ‘경제 1등 미국’을 내세우며 ‘중산층 경제’로 공화당과 정면 승부를 예고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워싱턴 상ㆍ하원 합동 회의장에서 신년 국정연설을 통해 공화당에 부자 증세 수용을 요구하며 “판결은 분명하다. 중산층 경제가 먹힌다”고 선언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소수만 특별하게 잘 사는 경제를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노력하는 모든 이들이 소득과 기회를 창출하는 경제에 전념할 것인가”라고 반문한 뒤 “정치가 발목을 잡지 않으면 이 정책은 작동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구체적으로 “상위 1%가 쌓아 놓은 재산에 걸맞은 세금을 회피하도록 허용해 불평등을 초래한 세수 구멍을 막자”며 “이 돈을 자녀 보육과 교육에 쓸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는 고소득층의 자본소득과 배당이익 최고세율을 현행 23.8%에서 28%로 올리는 등의 방안을 통해 향후 10년간 3200억 달러를 더 걷어 이를 2년제 커뮤니티 칼리지 등록금 전액 지원, 저소득층 유아 보육 지원, 맞벌이 부부 세액 공제, 최대 7일의 근로자 유급 병가 등에 사용하겠다는 세제 개편안이다. 여기엔 2016년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을 ‘중산층 정당’ ‘서민 정당’으로 내세워 공화당을 부자 정당의 프레임으로 포위하겠다는 포석도 깔려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대외 정책에선 “테러리스트들을 끝까지 추적해 이들의 네트워크를 해체하겠다“며 테러와 이슬람국가(IS) 응징을 밝혔다. 이날 의회에 IS에 대한 무력사용 권한을 승인해 주도록 요청도 했다.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은 “군사력과 강력한 외교가 결합될 때 우리는 (세계를) 가장 잘 이끈다”며 일방적인 지상군 투입은 않겠다는 기존 입장을 유지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정부에 협상 전권을 부여하는 신속협상권(TPA)를 허용해 달라고 의회에 요청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중산층 경제’를 들고 나온 데는 최근 경제 지표가 개선되며 지지율 상승으로 이어진 데 따른 자신감이 배경이다. 지난 19일 발표된 워싱턴포스트와 ABC 방송의 공동 여론조사에서 오바마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1년 8개월 만에 50%를 회복했다. 그는 이날 “2010년 이후 미국은 유럽, 일본보다 더 많은 일자리를 국민에게 제공했다”고 강조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신 경제’ ‘21세기 경제’ ‘강한 경제’ 등 미국과 관련된 ‘경제’ 표현을 26차례 썼다. 중산층 단어는 일곱차례 사용했다.

그러나 공화당은 부자 증세, 기후변화협약 등 당론 반대 현안을 놓곤 박수 불참으로 응수했다. 오바마 대통령 뒤에 앉아 있던 조 바이든 부통령이 기립 박수를 치는 동안 옆 자리의 공화당 존 베이너 하원의장은 그대로 앉아서 박수를 거부하는 장면이 수차례 연출됐다. 이날 86차례의 박수가 이어졌지만 공화당 의원들은 대부분 박수에 불참했다. 공화당의 오린 해치 상원 재무위원장은 국정연설에 앞서 “(부자 증세는) 계급 투쟁을 조장한다”고 반발했다.

◇쿠바ㆍ이란은 언급, 북한만 빠졌다=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어느 외국도, 해커도 미국 인터넷망을 중단시키거나 영업 비밀을 훔치거나 가정, 특히 아동의 사생활을 해칠 수 없다”며 “정부는 테러리즘과 마찬가지로 사이버 위협과 싸우기 위해 정보를 통합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사이버 위협을 촉발시킨 북한은 아예 꺼내지 않았다. 이는 적대국이었던 쿠바와 이란에 대해 각각 화해와 대화 상대로 언급한 것과 전혀 다르다. 오바마 대통령은 쿠바와의 국교 정상화에 대해선 “만료 시한이 오래전에 지나버린 정책을 끝내 버렸다”며 업적으로 내세웠다. 핵 협상을 진행 중인 이란을 겨냥해 공화당이 제재 법안을 통과시키면 거부권을 행사하겠다고 예고했다.

외교 소식통은 “북한을 언급 대상에서 제외하는 전략적 무시”라며 “강경 기조를 분명히 한 만큼 북한을 콕 찍어 말해서 도발 명분을 줄 이유가 없었다”고 해석했다. 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석좌도 “북한이 미국에 긍정적 태도를 보여주지 않는 만큼 거론할 필요 자체가 없었다”고 진단했다. 이날 국정연설은 내치가 중심이었던 만큼 북한은 후순위였다는 설명도 나온다. 반면 일각에선 북한 단죄가 예상됐던 국정연설에서 북한을 언급하지 않은 것은 북한의 향후 반응 여하에 따라선 대화의 여지를 남겨 놓는 다목적 복선으로 봐야 한다는 해석도 나온다.

워싱턴=채병건 특파원 mfem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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