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셸 위 스토리] 1. 골프 입문까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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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위는 공을 멀리 보내는 장기가 있다. 어릴 적 동네야구에서 4번 타자를 했고, 축구에서는 하프라인에서 골인시켰다고 한다. [골프 포 위민 제공]

1994년 미국 하와이주 호놀룰루의 한적한 주택가. 동갑내기 사내들보다 머리 하나가 더 큰 다섯 살짜리 소녀가 친구들과 함께 축구공을 차며 뛰놀고 있었다.

"아빠, 축구가 재미있긴 한데 뛰어다니니까 숨이 너무 차요."

"그래, 그럼 다른 운동을 해보자."

골프를 무척 좋아했던 아버지는 딸의 손에 골프클럽을 쥐여 주었다. 소녀는 그 길로 아버지의 손을 잡고 동네 골프장으로 달려갔다. 처음으로 골프 클럽을 쥐었는데도 공을 맞히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았다.

소녀는 아빠의 레슨을 받으면서 공을 점점 멀리 날려보내기 시작했다. 아빠가 선물해 준 어린이용 골프클럽을 들고 골프를 시작한 지 6개월 만에 가볍게 100야드를 넘겼다.

소녀의 이름은 11일로 만 16세가 되는 미셸 위(한국 이름 위성미), 아버지는 하와이대 관광경영학과 교수 위병욱(45)씨다.

6일 1000만 달러(약 100억원)의 후원계약을 하고, 프로 전향을 선언한 미셸 위는 13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팜데저트의 빅혼 골프장에서 개막하는 LPGA 투어 삼성월드챔피언십에서 프로 데뷔전을 한다.

미셸은 어렸을 때부터 안 해본 운동이 거의 없었다.

"축구.야구.골프.테니스.수영 등 해보지 않은 운동이 거의 없어요. 테니스는 두 살 때부터 일곱 살 때까지 했어요. 축구는 다섯 살 때부터 여덟 살 때까지 해봤고요. 수영은 네 살 때 시작했어요. 발레도 잠깐 했는데 곧 그만뒀어요."

미셸은 골프든 야구든 공을 멀리 때리는 것은 자신 있었다고 했다.

"야구를 할 때도 수비는 별로였지만 때리는 것은 잘했어요. 줄곧 4번 타자를 맡았거든요. 홈런을 치는 바람에 남의 집 앞마당에 공이 떨어진 적도 있었어요. 동네 올스타 팀에도 뽑혔었지요. 축구도 마찬가지예요. 하프라인 근처에서 골인시킨 적도 있어요." 여덟 살짜리 소녀가 하프라인에서 골인시켰다는 말이 믿어지지 않았지만 그냥 믿기로 했다.

미스코리아 출신(1985년 미스 보령제약)인 어머니 서현경(40)씨도 거들었다.

"어린이용 골프백 안에 5번, 7번 아이언과 드라이버가 들어있었는데 미셸은 처음부터 드라이버를 꺼내드는 거예요. 야구를 할 때도 멀리 때리는 데 솜씨가 있더니 골프도 무조건 공을 멀리 치는 것만 좋아했어요."

많은 운동을 해봤는데 굳이 골프를 택한 이유가 궁금했다. 미셸의 설명은 계속됐다.

"다른 운동은 숨차게 이리저리 뛰어다녀야 하는데 골프는 제자리에서 클럽만 휘두르면 되잖아요. 그러다 보니 다른 운동은 시들해지는데 골프는 점점 재미있어지더라고요."

꼭 1년 전인 지난해 10월 삼성월드챔피언십에서 그는 기자에게 골프 입문 계기를 이렇게 설명했다.

미셸은 하와이에서 나고 자랐기에 국적은 당연히 미국이다. 우리말 솜씨는 어느 정도일까. 간혹 영어 단어가 섞이고, 발음도 부정확하지만 의사소통에 전혀 지장이 없을 정도로 제법 유창하다.

2003년 LPGA 투어 CJ 나인브릿지 클래식에 출전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을 때의 에피소드. 드라이빙 레인지에서 연습 도중 갑자기 인상을 찌푸리더니 이렇게 외쳤다. "엄마, 어떡하지. 뒤땅 치는 바람에 드라이버에 기스(스크래치) 났어."

연습 라운드 때는 한술 더 떴다. "아빠, 오늘은 빠따(퍼터)가 잘 안 돼요."

엄마, 아빠가 하는 말을 듣고 한국말을 배운 미셸이 '기스'나 '빠따'가 한국말이라고 생각하고 있음이 틀림없다.

정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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