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36) -제79화 육사졸업생들(189) 장창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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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수학연한2년. 졸업후 육군소위로 입관과 동시에 초급대학 졸업자격을 부여한다. 우수생도에게는 미국유학의 특전을 제공한다』
l949년 5월7일 전국 각 일간지 광고란에는 2년제 사관생도 l기생 모집공고가 실렸다.
당시 중학교 6년을 갓 졸업하고 진로를 정하지 못해 고민하던 학생들에게는 실로 반가운 소식이었다.
앞서 여러 차례 이야기했듯이 사관학교 교육은 건군초기 시급한 장교양성의 필요성때문에 단기교육이 불가피해 1기생은 45일만에 졸업하는등 교육기간이 길어야 6개월 (8,9기생) 하였다. 그러나 후보생들이 대부분 과거에 군사경험이 있었던 사람들이어서 단기교육이었지만 그런대로 교육의 효과가 높았다고 본다.
그러나 계속 이와같은 단기교육만으로는 장교의 정예화, 나아가서는 군의 정예화를 기할 수 없다는 여론이 일기 시작했다.
49년초 이승만대통령과 군수뇌부는 육사를 4년제로 발전시킬 것을 구상하게 되었다. 이 구상에 대해 미군사고문단 측도 우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8기생의 졸업식날인 49년5월23일 당시 육사의 수석고문관「그랜트」소령은 미군사고문단장 「로버츠」 준장에게 다음기인 9기생의 모집을 2개월 정도 늦춰주도록 요청했다.
「그랜트」소령은 이 기간을 이용해 한국군장교중에서 영어실력이 우수한 사람을 선발, 이들에게 4년제 사관학교 교관교육을 실시해서 10기생부터는 육사교육기간을 4년으로 늘리는 것이 좋겠다고 보고했던 것이다.
교관양성계획은 곧바로 실시돼 전군에서 영어 잘하는 장교를 뽑아 미군사고문단의 협조로 교관요원 기초교육이 시작되었지만, 2개월이란 준비기간이 너무 짧았고 학교시설도 미비해 「4년제 육사」는 결국 「2년제 육사」로 낙찰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6개월 과정의「마지막 기」인 9기와 「2년제 사관생도 1기」의 모집공고가 동시에 신문에 실리게 되었다.
당시 신문에는 「제9기 사관후보생」과 「제l0기 육군사관생도」 모집공고가 나란히 실렸는데, 9기생은 종전대로「사관후보생」으로 불렀지만 10기생은 「사관생도」로 호칭했다.
사관생도 모집공고에 따르면 지원자격이 『49년7월l일 현재 만19세이상 23세이하의 중학교 6년 졸업 내지 동등의 학력소지자』로 돼 있었다.
입학시험은 신체검사및 학과시험(l차), 그리고 인물고사및 구두시험(2차)을 치르도록 했다.
응시원서 접수마감결과 무려 4천1백여명이 몰렸다.
1차시험은 서울지구가 육군본부에서 실시됐고, 대전지구는 제2여단, 대구지구는 제3여단,광주지구는 제5여단, 원주지구는 제6여단에서 각각 실시됐다. 그러나 2차시험은 육군본부에서 총괄해 태능본교에서 치렀다.
시험과정도 까다로와 일단 신체검사에 합격한 응시자에 한해 학과시험 (국어·수학·영어·역사·작문·지리·물리·화학)을 보게 했고 학과시험에 합격해야만 다시 2차시험을 볼 수 있었다.
최종합격자는 3백13명으로 발표됐다. 생도l기의 경쟁률은 결과적으로 13대1이였다.
10기생의 입학식은 49년7월15일 태능본교에서 거행되었는데, 이때 6개월과정의 「마지막 기」인 9기 사관후보생 3백50명과 경리사관생도 1기생52명도 함께 입교식을 가졌다.
생도1기인 10기생들의 입학때 모습은 30여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하나같이 콧날이 오똑하고 눈망울이 초롱초롱했으며 티없는 얼굴들이었다. 너무 순진한 모습들이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순수했던 이들은 그대로 전쟁터에서 꽂피워지고 다듬어졌으며 고급 지휘관생활을 통해 영글어졌다고나 할까. 하여튼 이런 이야기는 뒤로 미루겠다.
10기생 입학당시의 교장은 김홍일장군이었으나 50년6월 내가 부교장으로 있었던 육군참모학교장으로 전임된 뒤, 당시 7사단장이였던 이준직준장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생도대장에는 김웅수중령(재미)이 임명됐고, 생도대는 3개중대·9개구대(구대)·암개 내무반으로 평성됐다.
제1중대장에 김종오소령, 2중대장에 박원근소령, 3중대장에 박중윤소령이 보직되었다. 각구대장은 대위·중위급이 맡았으나 엄기표소위(8기생·예비역소장·전국회의원)는 유일하게 소위로 구대장을 했다.
10기생들은 처음 3백13명이 입교했지만 6·25와 월남전에서 1백20명이 전사하는등 이미 1백44경이 유명을 달리했다.
83년6욀 현재 생존해 있는 10기생은 1백69명이지만 현역으로 남아있는 분은 황영시육군참모총장과 소준열장군등 대장 2명뿐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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