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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총선 기적은 없었다|대처수상 재집권의 배경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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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승부는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
노동당이 지난 79년에 잃었던 정권고지를 재탈환하려고 기를 쓰고 달려들었지만 철권여재상이 장악하고 있는 진지를 뺏지 못했다.
「대처」수상이 남은 임기1년을 선선히 내던지고 조기선거를 실시한 것은 새로운 정책에 대한 신임을 묻기 위해서가 아니라 순전히 야당이 가장 약세에 몰려있던 때를 놓지지 않기 위해서였다.
어쨌든 만일 이번 선거에서 노동당이 이겼다면 10일 아침의 런던 증권 및 금융시장은 대혼란에 빠져들었을 것이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국방상들은 대소방위전략을 다시 짜기위해, 부산히 움직이는 판국이 되었을 것이다.
어쩌면 한국을 비롯한 동북아의 군사균형에 더 영향을 미쳤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노동당의 비핵방위정책과 대소유화자세로 한숨을 돌리게 될 소련이 극동군사력을 강화할 공산이 있기 때문이다.
보수당의 압승은 「대처」나 보수당에 대한 적극적인 지지의 소산이라기 보다는 노동당에 대한 실망표의 반사적효과라는 점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노동당에서 내건 정강정책이 지나치게 극단과 사회주의쪽으로 기울었고 특히 일방적인 핵무기철폐와 유럽공동체(EEC) 탈퇴는 노동당안에서 마저 반대가 많았을 정도로 오히려 감표요인이 되었다.
보수당 측에서는 노동당의 정견을 들추어가며 『여러분들은 마르크시즘을 택하실 것입니까』라고 경계의식을 높이는 작전을 폈는데 이런 작전이 어느정도 주효한 셈이다.
중간노선을 내세운 자유사민당 연합의 지지득표율이 괄목할만큼 높아진 것은 노동당에 갈 표가 머리를 돌린 것으로 풀이된다.
노동당의 패인으로 자체내분을 빼놓을 수 없다. 지도력이 부족한 「푸트」당수와. 「힐리」부당수의 엇갈린 주장, 당내 우파와 좌파간의 대립등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추태를 자주 노출시켰다.
선거 바로 전날 붓수가 많은 일간지 데일리 스타지는 1면 사설기사를 통해 『우리 신문은 만약 노동당이 잘 단합되고 지나치게 좌파쪽으로 기울지만 않았다면, 또 핵무기정책에서 좀 더 온건했다면 노동당을 지지했을 것이다』라고 노동당 불지지의 이유를 밝혔다.
선데이 타임즈는 노동당의 정강정책이 모순투성이라고 꼬집었고 전통적으로 노동당을 지지해온 가디언지마저도 『연합파에게라도 표를 주어 「대처」의 압승을 막자』고 했다.
실업자 중에서 30%가 노동당보다는 보수당을 지지하겠다는 것으로 나타난 여론조사결과도 오늘날 노동당이 서있는 좌표를 말해준다.
이에 반해 대승을 거둔 보수당은 영국민족주의와 대중자본주의를 기본철학으로 내세우고△자유시장경제체제로의 계속전진 △반인플레정책 고수 △나토 및 EEC 관계 강화, 그리고대소강경노선 △노조파업의 규제등의 정강정책을 내걸었다.
보수당은 작년 포클랜드전쟁을 계기로 국민지지의 가도를 달려 최근에는 물가안정(연4%)의 원군까지 겹쳐 기세를 얻은 셈이다.
마침 프랑스의 사회당정권이 경제정책에 실패, 곤경에 몰려 있는 이 때 영국에서도 노동당이 노골적으로 배척받는 것은 적지 않이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사회주의세력의 한계를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 【런던=이제훈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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