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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로또' 공립 어린이집 … 서울은 아동 1000명당 3곳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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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서울시 강남구의 구립 청담어린이집은 이 지역의 부모에게 가장 인기 있는 어린이집이다. 정원이 76명인데, 현재 대기 인원이 3181명이다. 그중 태아가 약 700명이다. 19일 이 어린이집 풀잎반(만 2세 어린이반)의 담임 신지영 보육교사(왼쪽)가 어린이들과 노래에 맞춰 춤을 추고 있다. [김경빈 기자]

19일 오전 10시 서울 강남구 강남구립 청담어린이집 만 3세반 책 읽기 수업. 교사 한 명이 아이 5명을 돌보고 있다. 한 아이가 “이건 뭐예요”라고 묻자 교사는 “무슨 그림같이 보이니”라며 바로 반응을 보였다. 이 어린이집 아이들의 상당수는 태아 때 대기자 명단에 올랐다. 지금도 대기자 3181명 가운데 태아는 700여 명이다. 강경미(46·여·대학강사)씨의 셋째(3·여)도 임신 4개월께 대기자 명단에 올랐다가 2년 전에 들어왔다. 그는 “안전사고나 아동학대가 전혀 없었고 선생님들이 아이를 너무 예뻐해 아이가 선생님을 보고 싶어할 정도”라고 말했다.

 요즘 학부모들은 이런 국공립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면 ‘로또 잡았다’고 한다. 국공립을 신뢰하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아이가 맞고 다닐 염려를 안 해도 된다는 데 있다. 지난해 어린이집 아동학대 265건의 대부분이 민간 어린이집(가정어린이집 포함)에서 발생했다. 국공립의 힘은 상대적으로 양호한 교사 근무 여건에서 나온다. 강남구립 청담어린이집만 해도 교사의 초봉이 190만원(수당 포함)이다. 가정어린이집보다 40만원가량 많다. 강남구청이 보조교사(5명)와 보육도우미(7명)의 인건비를 지원한다. 위탁운영기관인 경희대의 아동가족학과 학생들이 수시로 실습 나와 아이들을 돌본다. 이 덕분에 교사가 아이에게 집중할 수 있다. 신지영(27·여) 교사는 “보육교사가 되려고 대학에서 가족복지학을 전공했다. 사명감을 가지고 아이들을 가르치고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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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이런 얘기는 일부 지역, 일부 학부모에게만 해당하는 꿈 같은 얘기다.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역 주민은 국공립을 아무리 원해도 보낼 수 없다. 보육교사 김모(25·여)씨가 10여 명의 아이에게 주먹질을 한 인천 N어린이집이 있는 부평구만 해도 0~5세 아동 1000명당 국공립 시설이 0.87곳으로 인천에서 가장 적다(2013년 말 기준). 양모(33·여) 교사가 폭력을 휘두른 K어린이집이 속한 연수구에도 1.44곳(인천 평균 1.53곳)에 불과하다. 박초롱(31·여·인천시 부평구)씨는 “국공립 시설에 아이를 보내고 싶지만 불가능해 가까운 민간시설에 보냈다”고 말했다.

 서울(평균 3.09곳)도 구별로 3.7배 차이가 난다. 성동구가 6.35곳으로 가장 많고 은평구가 1.72곳으로 가장 적다. 강남구는 5.1곳으로 4위다. 서울 은평구 직장맘 박인교(32 )씨는 “2012년 6월 큰애(6)를 국공립 시설 대기자에 올렸는데 아직 연락이 없다” 고 말했다. 국공립 어린이집은 지난해 말 현재 2489곳(전체의 5.7%)으로 전년보다 157곳 늘었다. 하지만 전체 보육 대상 아동의 10.6%만 다닐 수 있다.

 국공립 시설이 부족한 곳은 대부분 재정자립도가 낮다. 은평구청 관계자는 “어린이집 하나 지으려면 20억원이 들고 운영비가 계속 들어간다”며 “국비 지원을 받아도 10%를 부담하는데 그럴 여유가 없다”고 말했다. 부평구청 관계자는 “운영비 지원이 부담스러워 민간시설을 국공립으로 전환하는 것도 어렵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국공립 시설을 한꺼번에 늘리기 어렵다면 부족한 지역부터 투자를 집중해야 한다”고 권고한다. 육아정책연구소 이미화 기획연구실장은 “민간 어린이집 보육교사의 질, 운영의 투명성을 높여 질을 관리하는 한편 국공립, 공공형 어린이집이 부족한 지역을 중심으로 계속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일주 공주대 유아교육과 교수는 “신도시나 인구가 많은 곳은 국공립 위주로 확대하고 다른 데는 민간시설을 국공립으로 전환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외국처럼 민간 의존도를 줄여야 한다. 프랑스의 경우 0~2세 영아가 다니는 집단보육시설(Creche)의 64%는 지방정부가, 29%는 부모협동 등 단체가 운영한다. 개인이 운영하는 데는 소수다. 3세 이상 유아가 다니는 유아학교(Ecole Maternelle)는 모두 공립이다. 일본에선 한국 어린이집과 비슷한 보육소 가운데 국공립이 48.6%, 민간이 51.4%다. 민간 가운데 90%가 사회복지법인이 운영하고 개인 운영 비율은 1.9%에 불과하다(2011년 기준).

◆특별취재팀=이에스더·정종훈·신진·최모란 기자 welfar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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