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라마’는 ‘시네마(영화)’와 ‘드라마’의 합성어입니다. ‘시네·라마 사이언스’에서는 다양한 영화·드라마 속 과학 이야기를 소개할 예정입니다. 이종필 교수는 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입자물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과학을 사랑하고 영화·드라마를 즐겨 봅니다. 『신의 입자를 찾아서』, 『이종필 교수의 인터스텔라』 등의 책을 썼습니다.
‘기초과학이 당장 밥 먹여 주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그럴 때마다 난처해 했던 내게 새 희망을 안겨준 영화가 있다. 국내 개봉 외화 중 세 번째로 1000만 관객을 돌파한 ‘인터스텔라’다.
‘인터스텔라’에 등장하는 수많은 과학적 내용은 단 하나의 방정식으로 요약할 수 있다. 바로 아인슈타인의 중력장 방정식(Gμv=8πGTμv)이다. 그의 특수상대성이론(E=mc²)에 익숙한 일반인들이라면 이 방정식이 낯설 수 있다. 하지만 중력장 방정식은 ‘중력의 본질은 시공간의 뒤틀림’이라는 일반상대성이론을 집약하고 있는 공식이다. 이것을 풀면 에너지 분포에 따라 시공간이 어떻게 휘어져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중력장 방정식은 ‘인터스텔라’에서 두 가지 점에서 대활약을 했다. 첫째 중력장 방정식에서 비롯된 온갖 현상들이 영화의 핵심 소재를 이뤘다. 블랙홀, 웜홀, 중력에 의한 시간 지연 등이다. 영화의 자문을 맡았던 미국 캘리포니아공대 의 킵 손 교수는 직접 중력장 방정식을 풀어 그 결과를 반영했다. 여태껏 ‘인터스텔라’만큼 블랙홀이나 웜홀을 과학적으로 충실히 구현한 영화는 없었다. 둘째, 중력장 방정식을 푸는 것 자체가 스토리상 가장 중요한 긴장 관계를 형성했다. 누군가는 ‘고작 방정식 하나가 어떻게 인류를 구원하 느냐’고 비웃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을 끝낸 핵무기는 E=mc²이라는 방정식과 처절한 사투를 벌인 물리학자에 의해 만들어졌다.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물리학자들은 그렇게 역사를 바꾸고 그 위에 20세기 문명사회를 세웠다.
이런 맥락에서 보자면 ‘인터스텔라’란 1000만 영화를 만든 원동력 중 하나는 중력장 방정식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생각한다. 『조선왕조실록』에 적힌 한 줄 기록이 드라마 ‘대장금’과 ‘별에서 온 그대’를 만들었듯 말이다. 2015년은 아인슈타인이 중력장 방정식을 발표한 지 꼭 100년이 되는 해다. 자신의 방정식 덕에 100년 뒤 ‘인터스텔라’란 흥행 영화가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아인슈타인은 무덤 속에서도 기뻐했을 것이다. 하지만 『조선왕조실록』이 단지 ‘한류 드라마’ 때문에 가치 있는 게 아니듯, 그의 위업이 ‘1000만 영화를 만든 방정식’으로만 기억된다면 아인슈타인은 무척 섭섭할 것이다.
중력장 방정식 이전에는 정량적인 과학이론으로서의 ‘우주론’이 없었다. 21세기 현재 인류가 이해하고 있는 ‘표준 우주론’도 이 방정식 위에 세워졌다. 만약 인류가 우주로 나아가는 새로운 문명 단계에 접어든다면 어떤 형태로든 올해 100세가 된 이 방정식을 피해 갈 길이 없다. ‘인터스텔라’에서처럼 방정식 하나가 인류를 구원하는 상황이 머지않은 미래에 실제 현실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5년 뒤 우리도 달에 탐사선을 보낸다고 한다. 그때쯤이면 ‘기초과학이 밥 먹여 주느냐’는 질문에 답할 말이 하나 더 생길 것 같다.
이종필 고려대 연구교수
[사진·영상 워너브러더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