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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필의 시네·라마 사이언스] ① '인터스텔라'와 중력장 방정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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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시네·라마’는 ‘시네마(영화)’와 ‘드라마’의 합성어입니다. ‘시네·라마 사이언스’에서는 다양한 영화·드라마 속 과학 이야기를 소개할 예정입니다. 이종필 교수는 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입자물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과학을 사랑하고 영화·드라마를 즐겨 봅니다. 『신의 입자를 찾아서』, 『이종필 교수의 인터스텔라』 등의 책을 썼습니다.

중력장 방정식을 풀어 묘사한 .인터스텔라.의 블랙홀(왼쪽)과 영화 주인공의 모습. [사진 워너브러더스]

‘기초과학이 당장 밥 먹여 주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그럴 때마다 난처해 했던 내게 새 희망을 안겨준 영화가 있다. 국내 개봉 외화 중 세 번째로 1000만 관객을 돌파한 ‘인터스텔라’다.

 ‘인터스텔라’에 등장하는 수많은 과학적 내용은 단 하나의 방정식으로 요약할 수 있다. 바로 아인슈타인의 중력장 방정식(Gμv=8πGTμv)이다. 그의 특수상대성이론(E=mc²)에 익숙한 일반인들이라면 이 방정식이 낯설 수 있다. 하지만 중력장 방정식은 ‘중력의 본질은 시공간의 뒤틀림’이라는 일반상대성이론을 집약하고 있는 공식이다. 이것을 풀면 에너지 분포에 따라 시공간이 어떻게 휘어져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중력장 방정식은 ‘인터스텔라’에서 두 가지 점에서 대활약을 했다. 첫째 중력장 방정식에서 비롯된 온갖 현상들이 영화의 핵심 소재를 이뤘다. 블랙홀, 웜홀, 중력에 의한 시간 지연 등이다. 영화의 자문을 맡았던 미국 캘리포니아공대 의 킵 손 교수는 직접 중력장 방정식을 풀어 그 결과를 반영했다. 여태껏 ‘인터스텔라’만큼 블랙홀이나 웜홀을 과학적으로 충실히 구현한 영화는 없었다. 둘째, 중력장 방정식을 푸는 것 자체가 스토리상 가장 중요한 긴장 관계를 형성했다. 누군가는 ‘고작 방정식 하나가 어떻게 인류를 구원하 느냐’고 비웃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을 끝낸 핵무기는 E=mc²이라는 방정식과 처절한 사투를 벌인 물리학자에 의해 만들어졌다.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물리학자들은 그렇게 역사를 바꾸고 그 위에 20세기 문명사회를 세웠다.

 이런 맥락에서 보자면 ‘인터스텔라’란 1000만 영화를 만든 원동력 중 하나는 중력장 방정식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생각한다. 『조선왕조실록』에 적힌 한 줄 기록이 드라마 ‘대장금’과 ‘별에서 온 그대’를 만들었듯 말이다. 2015년은 아인슈타인이 중력장 방정식을 발표한 지 꼭 100년이 되는 해다. 자신의 방정식 덕에 100년 뒤 ‘인터스텔라’란 흥행 영화가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아인슈타인은 무덤 속에서도 기뻐했을 것이다. 하지만 『조선왕조실록』이 단지 ‘한류 드라마’ 때문에 가치 있는 게 아니듯, 그의 위업이 ‘1000만 영화를 만든 방정식’으로만 기억된다면 아인슈타인은 무척 섭섭할 것이다.

 중력장 방정식 이전에는 정량적인 과학이론으로서의 ‘우주론’이 없었다. 21세기 현재 인류가 이해하고 있는 ‘표준 우주론’도 이 방정식 위에 세워졌다. 만약 인류가 우주로 나아가는 새로운 문명 단계에 접어든다면 어떤 형태로든 올해 100세가 된 이 방정식을 피해 갈 길이 없다. ‘인터스텔라’에서처럼 방정식 하나가 인류를 구원하는 상황이 머지않은 미래에 실제 현실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5년 뒤 우리도 달에 탐사선을 보낸다고 한다. 그때쯤이면 ‘기초과학이 밥 먹여 주느냐’는 질문에 답할 말이 하나 더 생길 것 같다.

이종필 고려대 연구교수

[사진·영상 워너브러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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