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머니돈과 사립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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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우리의 대학들이 과거 「우골탑」이란 별명으로 불리던 때가 있었다. 소팔고 땅팔아 모아온 돈으로 허허벌판에 빌딩을 세우고 「상아탑」을 이루어 가던 때의 얘기다. 6·25를 전후한 50년대초부터 60년대전반기까지 대부분의 사학이 그런 모습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학을 설치·운영하는 재단은 물론, 정부는 교육여건이나 연구환경을 만들어 놓고 학생을 모집한 것이 아니었다. 학생을 먼저 뽑고, 그들의 주머니돈을 염출해 학교시설을 갖춰 온 것이다. 따라서 학생을 더 많이 모으는 것이 대학발전의 지름길이었고, 이를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사학설립자도 있었다.
현재는 여러가지로 사정이 달라지기는 했지만 대학운영비의 대부분을 학생들의 호주머니에 의존하기는 마찬가지다. 문교부가 최근 조사한 전국76개 4년제대학의 운영실태를 보면 전체 운영비의 90%이상이 학생등록금과 그 등록금을 은행에 예치해서 얻어내는 이자등이었다.
한마디로 우리의 사립대학은 학부모의 주머니로 운영되고 있는 셈이다. 물론 상당액을 내놓는 재단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이 학생등록금에 의존한다고 볼 수 있다. 교육비용부담의 측면에서 보면 재단은 물론 정부도 대학교육이 공교육이란 정신을 외면하고 있다.
외국의 경우 학생과 재단·국가는 운영비를 각각 비슷한 비율로 부담하는 것이 관례로 돼있다. 미국의 명문사립 하버드대의 경우 78년총수입중 학생부담은 29·4%. 35%가 재단기부금으로 충당됐고 정부가 26%를 지원했다. 일본사립대학의 운영비 학생부담률은 이보다는 많은 편이지만 41% (75년기준)를 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이들 대학은 학생과 교수중심의 자율적인 운영을 하고있는데 비해 우리의 경우 그와는 반대라는데 더 큰 문제가 있는지도 모른다. 「지원은 늘리고 간섭은 줄인다」는 선진외국대학의 운영정신과는 달리 간섭은 늘어나는데 지원은 줄어 들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학생 한명을 마음대로 뽑지 못하면서 대학이 운영비 마련에 적극적일 수 없고, 대학이 계속 학생호주머니에 의존하는 전근대적인 운영방식을 탈피하지 못하는 한 간섭을 받지 않을 수 없는 악순환이 30여년간 계속되고 있는 셈이다. 정부의 대학재량권 대폭이양과 대학의 경영방식쇄신이 함께 도색돼야할 시점에 온 것 같다. <오홍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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