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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한당은 번민한다"|여권과 당외야권틈새…"어대쯤 좌표를 잡아야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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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민한당이 무거운 분위기에 휩싸여 있다. 예년의 이 철이라면 한가로울 여의도당사에는 요즘 연일 고위당직자들이 아침부터 나와 간담회를 갖는데 회의분위기도 침중하고 발언내용도 심각한 편.
시국전개와 관련해 민한당은 확실히 고민하고 있으며, 뭔가 한가지라도 당이취할 속시원한 방안이 없다는데 그 고민은 더욱 큰 눈치다.
○…『우리당은 지금 사면초가에 싸여 있다. 서로 기분에 흡족치 않은 일이 설사 있더라감정을 자제해 감싸주고 협조해 나감으로써 지혜롭게 대처해 나가야 한다.』
지난 5월31일 열린 당무회의에서 유한열 사무총징이 한 이 말은 오늘의 민한당이 처한 입장과 고민을 단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정부와 여당으로부터는 동참자로서의 의리와 약속을 지키라는 추궁을 받고 있고 한쪽에서는 야당다운 야당구실을 해보라는 질책을 듣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당내 일부에서도 당지도부가 너무 현실에 안주하여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한다는 비판의 소리가 있다.
그야말로 당지도부는 안팎 곱사등이가 되어 있는 상태다(고재청국회부의장).
한마디로 민한당의 고민은 당의 좌표설정문제라고 할수 있다. 여당과의 거리는 어느 정도는 유지하고 당외야권과 적정거리는 얼마로 하는게 옳을까, 지금 유지하고 있는 거리는 과연 적정한 것인가등에 관한 고민이다. 또 그 거리를 조정해보고 싶어도 「현실의 벽」이 여의치 않다는데 고민이 있는 듯 하다.
창당 후 2년간 이런 고민을 대강대강 넘겨 왔지만 정치장외에서 무슨 일이 나면 고민은 다시 부상하곤 했는데 그것이 요즘 극히 심각해진 것 같다.
창당2년이 지난 오늘에 이르기까지 민한당, 특히 당지도부가 뚜렷이 내놓을 만한 실적이 없는 것도 「사면초가」라는 말이나온 한 원인이다.
전통야당의 유일한 승계세력임을 자임하며 81석이라는 적지 않은 원내의석을 가졌으면서도 이같은 외형적 성장에 버금갈만한 내적 축적이나 원내활동의 전과를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
국회법을 고치고 지자제를 조속히 실시토록 하겠다고 했지만 이유야 어떻든 어느 한 가지도 이뤄진 것이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창당초기의 인적구성의 생경함이 아직도 남아 있다. △구신민당세력과 신참세력△다선과 초선 △당직자와 비당직자 △겸직과 비겸직의원간의 거리감도 완전 해소되지 못한 상태다.
○…오늘날 민한당이 당면하고 있는 고민에 대해 소속의원들은 대체로 「정치상황의 한계」라는 논리를 펴고 있다.
고영구의원은 『야당의 정치적 역량이 요구되지도 않고 또 발휘될 수도 없는 오늘의 정치풍토와 상황이 민한당으로 하여금 근본적인 고민을 하게 만들고 있다』고 진단한다.
홍사덕의원은『국민이 야당에 기대하고 있는 역할과 현재의 민한당이 수행할 수 있는 역할과의 차이가 너무 큰 것이 고민의 씨앗』이라고 토로.
유한열사무총장은『정치는 곧 대화로 시종되는 것인데 우리의 대화상대(민정당)가 갖고 있는 정치적 한계로 인해 민한당의 정치적 한계가 자동적으로 결정돼 버리고 말았다』고 주장.
그러나 김현규정책심의회의장 같은 이는 「비록 주어진 한계 상황속에서 나마 어려움을 극복하기위한 소속의원·지도부의 일치된 행동이 있어야 하는데 무책이 상책인양 팔짱을 끼고 앉아 있을 수 밖에 없는 현실과 이를 타개하려는 노력이나 번민의 흔적이 적은게 문제』라고 자생논을 제기한다.
박관용의원도 재야가 새삼주목의 대상이 되는 건 정치권에서 배우들이 활발한 연기를 보여주지 못한데 그 원인이 있다며 무력해져 버린 야당의 기능회복이 가장 급선무라고 주장한다.
○…야당의 역할을 되찾아 보겠다는 안간힘과 자생논이 일기 시작하면서 민한당의 당직자나 소속의원들은 확실히 전에 해비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신상우부총재가 윤보선전대통령을 2일 안국동자택으로 찾아간 일이라든가, 유치송총재·고재청국회부의장·김현규정책위의장등의 외부인사접촉이 최근 부쩍 잦아지고 있는 사실이 다 이와 맥을 같이하고 있다고 봐야한다.
고국회부의장은 제5공화국에 참여한 이상 민한당은 국회를 통한 민주화작업에 정진할 수 밖에 없고 정국안정을 유지할 공동의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때문에 정국을 파국으로 몰고가지 않기 위해서는 정부·여당인사들과 광범위한 접촉을 시도해야하고 이를 통해 공통의 인식을 갖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확실히 민한당 당직자들은 궁극적으로 민주화의 목표를 달성한다는 대명제에 있어서는 당외와 다를바가 없지만 이를 추구하는 방법이나 서 있는 위치가 다르다는 점을 깊이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참여속의 개혁」이란 입장을 고수해나갈 것으로 보인다.
당내일부에서 제기됐던 의원총회소집이나 여야영수회담제의 및 당외야권과의 제휴주강이 소수의견으로 불발하고만 것도 이같은 단내의 지배적인 분위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기의 기미가 보이는 정국의 현안이 어떤 방식으로 수습되고 어떤 방향으로 전개되어가느냐에 따라 민한당이 안고 있는 고민이 예상외로 빨리 표출될는지도 모른다. <고흥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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