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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비밀 푸는 데 필요한 것은 상상력과 판단력, 끈기랍니다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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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인터스텔라’를 통해 우주의 신비를 알아보는 책 『이종필 교수의 인터스텔라』를 쓴 이종필 교수(가운데)에게 물리학과 우주에 대해 물어본 최상인·한명준·서혜원(왼쪽부터) 소중 학생기자. 서울 명동 동아시아출판사 인근의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는 시종일관 화기애애했다.

아득하게 펼쳐진 사건의 지평선 위로 작은 우주선 한 대가 물결처럼 흘러갑니다. 인류의 멸망이라는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 물리학 이론인 ‘중력 방정식’의 답을 찾으러 떠나는 영화 ‘인터스텔라’ 주인공 쿠퍼의 모습이죠. 영화에는 다양한 우주의 법칙이 직접적으로 구현됩니다.

블랙홀은 왜 생기는지, 중력의 힘은 어떻게 작용하는지 등을 다룬 책도 있어요. 인터스텔라를 통해 우주의 신비를 알아보는 책 『이종필 교수의 인터스텔라』를 지은 물리학자 이종필(44) 고려대 연구교수를 소중 학생기자들이 만났습니다.

글=이경희·김록환 기자 , 사진=우상조 인턴기자 , 동행취재=서혜원(창원 웅남초 6)·최상인(창원 사파중 2)·한명준(서울 도성초 5) 학생기자

―영화 ‘인터스텔라’에서는 블랙홀이 주황색으로 나왔어요.

“블랙홀에 빨려들어간 빛은 빠져나오지 못하기 때문에 어두워야 하죠. 그런데 주변 별에서 나온 가스가 블랙홀로 회전하며 빨려 들어가는 과정에서 서로 마찰을 일으켜 에너지가 빛으로 방출되기도 해요. 주로 X선이 많이 나오죠. 특정한 파장대의 빛을 영화에선 오렌지빛 원반층으로 시각화한 겁니다.”

『이종필 교수의 인터스텔라』
이종필 글, 김명호 그림
동아시아, 236쪽, 1만2000원
블랙홀과 웜홀, 4차원을 넘어선
덧차원 등 영화 ‘인터스텔라’에
등장하는 여러 과학 이론을 쉽게
풀이한 재미있는 우주론 강의.

―5차원이 나오는데요.

“일상적으로 우리가 겪는 힘은 전자기력입니다. 그런데 생명 현상을 일으키는 전자기력에 비해 중력이 너무 약해요. 가령 컵을 드는 과정을 봅시다. 팔에 전기적 신호로 근육작용이 일어나 움직이는 거고, 손과 컵의 마찰력도 전자기력이에요. 그런데 지구 전체가 컵을 밑으로 잡아당기고 있는데, 나는 가볍게 한 손으로 컵을 들어올릴 수 있잖아요. 이게 가능한 건 중력이 전자기력보다 10의 40승(1040) 배 약해서예요. 그런데 소립자 세계로 들어가면 이론적으로 문제가 생겨요. 그걸 해결하기 위해 과학자들이 찾아낸 방법 중 하나가 덧차원 이론입니다. 원래 중력은 강한데, 덧(extra)차원으로 빠져나가서 우리가 사는 3차원에선 약하게 느껴진다고 설명하는 거죠. 영화에서 ‘중력만이 5차원으로 나갈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 이유입니다.”

―쿠퍼도 덧차원으로 들어간 건가요.

“그런 것 같아요. 만약 덧차원으로 중력자만 나갈 수 있다면 쿠퍼처럼 전자와 양성자 따위로 구성된 보통 물질은 덧차원에 아예 진입 자체를 할 수 없거든요. 영화에선 전자나 양성자도 덧차원에서 존재할 수 있다는 일부 학자들의 이론을 적용한 것 같아요.”

―3차원의 축에 시간이 추가된 게 4차원인데요, 5차원엔 무엇이 추가된 건가요.

“시간은 하나의 축이고, 4차원에다 공간이 하나 추가되는 겁니다. 시간이 하나 더 있을 가능성도 연구해봤지만 별로 재미있는 결과는 없었어요. 시간은 하나로 놓고 공간이 덧씌워지는 걸로 봅니다.”

―만약 인터스텔라의 주인공처럼 지구를 구하기 위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임무를 맡게 된다면.

“개인적으로 겁이 많아서 그런 임무를 맡지는 못할 것 같아요. 다른 방면에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연구를 할 것 같습니다(웃음).”

1 물리학에 대해 설명하는 이종필 교수. 2 영화 ‘인터스텔라’ 속 블랙홀.

―지구와 가장 비슷한 행성이라 알려진 ‘케플러186f’에 생명체가 살 가능성이 있나요.

“만일 행성에 물이 있다면 생명이 탄생할 가능성은 분명 높아요. 다만 확정은 금물입니다. 지구에 어떻게 생명이 생겼는지도 정확한 이유가 아직 밝혀지지 않았거든요. 지구와 비슷한 환경이라면 인간과 닮은 생명체가 탄생할 가능성은 존재합니다. 45억 년의 역사를 가진 지구처럼, 그 행성의 역사도 수억 년 이상 그 상태로 지속됐다는 전제 하에서 말이죠.”

―우리가 아는 우주 외에 또 다른 우주가 있을까요.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가 여러 우주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는 다중우주이론은 스티븐 호킹 등 적지 않은 과학자들이 지지하고 연구하는 주제입니다. 아직 증거는 포착되지 않았지만요. 심지어 우리 우주가 영화 매트릭스처럼 시뮬레이션 된 우주가 아닌가 하는 추론도 하고 있어요. 비록 저열한 수준이지만 인간도 우주를 시뮬레이션 하는데 뭔가 인간 이전에 이상한 존재가 있어서 이 우주와 우리를 시뮬레이션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할 수 있죠. 관측 신호에 어떤 흔적을 남길 것이냐를 연구하는 사람도 있어요. 상상력이 정말 중요하죠. 그래서 어릴 때 재미있는 책을 많이 읽어야 해요. 요즘 인터넷의 짧은 글을 많이 보잖아요. 그보다 긴 글, 고전을 많이 읽어야 해요. 좋은 작품을 읽으면 머릿속에 오래 남잖아요. 수학 문제 열심히 푼다고 두뇌가 계발되는 게 아니거든요.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데엔 고전만한 게 없어요. 생각을 안 할 수 없게 만드니까요.”

―어떤 고전들 말인가요.

“세계명작이나 단편 고전이요. 옛날 거라고 무시하면 안 돼요. 다양한 부분에서 상상력을 키워야 나중에 과학자가 되더라도 정말 훌륭한 일을 할 수 있어요. 한국인들은 주어진 틀에서 계산은 좀 하는데, 완전히 새로운 세상을 여는 일은 잘 못하거든요. 가령 스마트폰도 우리가 처음 만든 게 아니잖아요. 남들이 해놓은 걸 따라가는 거죠. 창의적 생각을 하는 교육을 못해서예요. 기초과학도 마찬가지 어려움에 처해 있죠. 어릴 때부터 계산만 시킨 후유증이에요.”

―어릴 때 어떤 교육을 받으셨는지.

“옛날 주입식 교육 받고 자랐죠, 당연히. 그래서 여전히 그냥 계산만 열심히 하고요. 사실 나중에 가서 내가 진짜 열심히 공부해야겠다, 전문 학자로 들어서야겠다는 결심을 하는 순간 기술적인 것, 수학적인 걸 다 하면 되거든요. 여러분이 전문 수학자 될 거 아니고, 전문 과학자 될 게 아닌데, 모든 학생이 경시대회 수준으로 문제 풀고 있잖아요. 만약 전국 모든 초·중·고 학생들이 피카소 수준의 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생각해보세요. 얼마나 어이가 없어요? 그런데 왜 영어·수학은 그래야 하냐고요. 그게 사람을 망치는 겁니다. ‘너 왜 그림이 다빈치만 못해? 넌 낙오자야.’ 그게 제도화된 거죠.”

―저는 초등학교 5학년인데, 고교 수학 정석을 공부하는 친구도 있어요.

“그 친구들이 결국 어떻게 살아갈지 궤적을 보세요. 국제중, 외고나 과학고 같은 특목고, 그 다음엔 서울대. 그렇게 서울대 간 아이들이 그럼 과학을 잘 하느냐. 책에 있는 문제를 숫자나 순서만 살짝 바꿔서 내도 쩔쩔 맨답니다. 사교육 하나 안 받았다가 지역균형 선발로 들어온 친구들이 나중에 훨씬 두각을 드러내요. 나도 만약 여러분들에게 1년 바짝 가르쳐 고교 정석을 마스터시키라면 할 수 있어요. 미적분 같은 건 규칙 외우면 대학 수준의 문제도 풀 수 있죠. 그런데 그게 무슨 의미예요? 어린아이들은 잘 외워요. 많은 걸 알게 될수록 내 스스로 생각하는 단어가 떠올라 오히려 외우기 힘들죠. 가령 어린아이가 조선왕조실록 줄줄이 왼다고 사도세자가 왜 뒤주에 갇혀 죽었는지, 인조반정이 우리 역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알 리가 없잖아요. 초등학생이 고교 정석을 배우는 건 기계적으로 문제를 풀 수 있다는 거지, 거기에 담긴 수학적·과학적 의미를 아는 게 아니에요. 인류가 수백, 수천년 간 수많은 사람들이 노력해서 만들어 온 지식체계를, 기교적인 부분만 한두 해 배웠다고 해서 이해할 수 있을까요? 그건 성인도 마찬가지예요. 온전히 이해하려면 충분한 시간이 필요해요. 여러분에게 필요한 건 방대한 인류의 지식을 혼자 헤쳐서 원하는 걸 받아들이고 나의 언어로 해석하는 능력이에요.”

―물리는 어떤 학문인가요.

“물리는 말 그대로 사물의 이치를 공부하는 학문입니다. 여러분 앞에 있는 책상이나 의자와 같은 모든 사물이 모습을 띄는 원리라고 할 수 있죠. 자연에 존재하는 궁극적인 질서를 규명하는 학문이에요. 그래서 어렵죠.”

―물리학의 매력은 뭘까요.

“물리학은 마약입니다. 드라마에 나오는 출생의 비밀에도 시청자들이 열광하는데, 우주 출생의 비밀은 얼마나 궁금해요. 물리학을 공부하며 알게 되는 자연의 비밀 하나 하나가 모두 놀랍고 희열을 안겨줍니다.”

―물리학자라면 아인슈타인 같은 천재가 떠오르는데요.

“이제 더 이상 한 사람의 천재가 이끌어가는 시대가 아니에요. 여럿이 모여 집단지성을 형성하면서 좋은 결과를 이끌어내는 시대죠. 평범하지만 물리학에 끈기와 애정을 가진 사람이 더 필요합니다.”

이종필 교수는···  서울대에서 물리학 입자물리이론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 고려대 전기전자공학부 BK21플러스 휴먼웨어 정보기술사업단 연구교수. 저서로는 『신의 입자를 찾아서』 『대통령을 위한 과학 에세이』 『물리학 클래식』 『이종필 교수의 인터스텔라』 등이 있다.

이종필 교수가 추천하는 책

『우주 전쟁』 허버트 조지 웰스, 문학동네

어릴 때 이 책을 읽고 외계인이 정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처음 하게 됐다. 한동안은 화성인이 지구를 침공하면 어쩌나 걱정에 잠을 설치기도 했다. 인간이란 왜 이렇게 나약한 존재일까 실망하면서도 험한 환경 속에서 여태 살아남은 데 대한 경외감이 들었다. 우주와 화성에 대한 로망을 갖게 한 책.

『톰 소여의 모험』 마크 트웨인, 문학동네

톰 소여는 어릴 적 롤 모델이었다. ‘한 번 사는 인생, 톰 소여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할 정도였다. 장난꾸러기라는 게 큰 죄가 아님을 알게 해줘서 고마웠던 책. 겁이 많던 나는 위기의 순간에 빛났던 톰 소여의 용기와 꾀가 부러웠다. 꿈과 모험심은 거세된 채 학교·학원에만 목을 매는 학생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해리포터 시리즈』 조앤 K. 롤링, 문학수첩

서른살에 박사 학위를 받고 읽으며 내 나이를 잠시 잊었다. 물리학자라는 직업을 망각한 채 ‘어딘가에 정말 호그와트 마법학교가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좋은 과학이론과 좋은 소설은 결국 기발한 상상력에서 출발한다는 공통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내가 어릴 때는 왜 이런 책이 안 나왔을까 통탄했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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