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희수 교수의 보석상자] 오드리 헵번과 티파니 옐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2면

1940년대 뉴욕을 배경으로 신분상승을 꿈꾸는 여주인공 홀리가 진실한 사랑을 찾아가는 영화가 '티파니에서 아침을'이다. 장년층이라면 오드리 헵번의 청순한 얼굴과 함께 주제가 '문리버(Moon river)'의 달콤한 멜로디와 아름다운 가사를 기억할 것이다.

영화 덕분에 보석상 티파니의 이미지가 매우 좋아졌다고 한다. 미국의 상술이 이를 놓칠 리 없다. 오드리 헵번과 '티파니 옐로' 다이아몬드(사진)가 어우러진 사진 한 장은 티파니를 알리는 훌륭한 광고가 됐다.

다른 유명 다이아몬드와 달리 티파니 옐로는 출생지가 불분명하다. 대체로 1877년께 남아프리카의 프랑스계 광산에서 채취된 것으로만 알려지고 있다. 카나리아의 색을 닮았다 해서 그 색을 카나리아 황색이라고도 한다.

가공하기 전 원석의 크기는 287.42 캐럿이었다. 이 원석은 미국 티파니에서 일하던 전설적 보석학자인 쿤즈를 만나면서 운명이 바뀐다. 1878년 쿤즈는 일 년 가까이 돌을 관찰한 뒤 128.54 캐럿의 쿠션 커트로 다듬었다. 돌은 폭 27㎜, 길이 28.25㎜, 두께 22.2㎜에 모두 90개의 면을 가진 티파니 옐로로 변신했다.

장인의 섬세한 손길은 돌 안의 계산된 통로로 빛을 진행시켜 최상의 광휘를 갖는 보석으로 만들었다. 특히 티파니 옐로는 인공 불빛 아래서 더 뛰어난 광휘를 보인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이 보석은 파리의 티파니사가 1만8000달러에 구입, 미국으로 수출했다. 하지만 당시 남아프리카에서 뛰어난 황색 다이아몬드가 다수 발견되고 있어 그리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이 다이아몬드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의외로 동양인이었다. 1896년 청나라 말기 직예총독 겸 북양통상사무대신이라는 긴 직함을 가졌던 실세 이홍장(李鴻章)이 미국을 방문했다. 그는 당시 미국 대통령 그랜트가 "세계에는 세 명의 위대한 지도자, 글래드스톤, 비스마르크와 이홍장이 있는데 그중에 가장 위대한 이는 이홍장"이라고 평가받던 인물. 그가 미국에서 "티파니 옐로가 보고 싶다"고 했던 것이다.

그 후 이 보석은 유명세를 타고 티파니 뉴욕에 거의 수십 년간 전시되면서 수백만 명이 관람했다. 이어 미국 각지에서 순회 전시회를 가졌으며 1971년에는 킴벌리 광산(유명한 다이아몬드광산)의 100주년 기념식을 위해 남아프리카에 다녀오기까지 했다. 티파니는 51년 이 보석을 팔려고 했지만 거래는 성사되지 않았으며 72년에도 뉴욕 타임스에 500만 달러에 판다고 광고를 냈으나 어떤 이유에서인지 거래는 이뤄지지 않았다.

현재 이 돌의 가치는 무려 1000만 달러가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희수 연세대 교수(지구시스템과학과)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