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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서 멀리서|모래알 가정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분주했던 5월이 가고 있다. 다행스럽게도 가정의 달이 있었기에 우리에게 많은 것을 깨우치게 해준 듯하다. 그러나 또한 불행스럽게도 자녀살해, 부친살해, 자녀와 남편살해, 동반자살등 끔찍하고도 놀라운 가족간 폭력사건이 잇달아 일어났었던 달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가 어디로 향해서 변화하고 있는 지를 정확하게 점칠 수는 없지만 두가지 경향이 있는 듯하다. 하나는 유럽이나 미국 등과 같은 서양식 생활양식을 따라가는 흐름이었고 다른 하나는 우리의 옛것을 지키면서 일본식으로 변모해가는 흐름이 있는 듯하다. 서양 것이란 주로 의식주의 물질적 생활양식을 위주로한 것이고, 대중문화·기업경영방식·교육은 일본것의 모방이 아주 많은 듯 하다. 그런데 가족관계나 가정생활의 양식은 서양 것을 많이 따라 가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결혼 가족형태·가족관계·이혼 등의 문제에서 서양의 유형과 비슷한 양상을 띠고 있다. 데이트를 쉽게 한다거나, 결혼을 쉽게 한다거나하는 것뿐 아니라 처녀임신도 부끄럽게 생각 안하게 되었다거나, 또 미혼부모가 급증하고 있다거나, 미혼모가 인공중절을 별로 가슴아파 안한다거나, 부끄러워하는 기색도 없이 태연하게 해치운다거나, 결혼한 부부가 쉽게 이혼한다거나 하게되었다는 정도 그렇다.
자기네 가정 안의 감추고 싶은 면, 이혼을 할뻔했다거나 또 재혼을 했다거나하는 따위를 예사롭게 남에게 말할 수 있게된 것도 그렇다.
자기 아이가 정신장애로 인해서 정신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다거나 소년원의 신세를 진척이 있다는 이야기도 별로 수치스러운 눈치 없이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가족은 단촐해져서 서로간에 신경 쓰고 갈등을 일으킬 기회는 접점 줄어들었고, 서로가 서로를 이해할 기회도 가족이 단촐 해졌기 때문에 쉬워진듯 하지만 실상은 더욱 줄어 들었다. 가족원끼리도 더욱 소외해지게 된 것이다.
핵가족이 되면서 가족원들이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채널이 줄어들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버지 어머니가 모두 바쁘고, 아이들도 제각기 바쁘다. 제각기 하는 일이 다 다르다. 생활 스케줄도 다르다. 관심의 세계도 다르다. 세대간의 단층이 심해졌다. 가족수가 적어졌다는 것이, 소수의 가족원끼리의 지속적인 관계나 대화와 정을 나눌 기회가 많아졌을 듯하나, 사실은 같은 사람끼리의 지리하고 지겨운 관계만이 존재할 뿐이다.
그리고 가족원끼리의 갈등은 중재자가 없는 탓으로, 극한으로 치닫게 되는 일이 많아 졌다. 그래서 핵가족은 파탄되거나 해체되기가 쉬운 것이다.
그뿐이 아니라 아주 비극적인 현상은 아버지가 자녀를 살해하고 시체를 끔찍한 방법으로 암매장하는 따위의 사건, 어머니가 돈 때문에 자녀를 독극물로 살해한 사건, 아들이 아버지를 살해하고 암매장한 사건, 남편이 아내를, 또 아내가 남편의 보험금을 타기 위해서 위계살인, 독극물로 살해하는 사건들.
그리고 청소년들의 비행과 범죄의 격심한 증가, 죄질의 흉폭화, 강력범의 증가, 청소년의 가출, 마약·알콜중독·성범죄·청소년 성병의 만연, 정신장애자의 증가. 이런 현상들은 대부분이 그렇다고는 할 수 없으나 가정의 해체현상에서 비롯되는 일이 많다. 가족의 해체란 것은 결혼도하지 않고 동거하거나 그린 동거생활의 결과에서 얻어지는 미혼부모의 자녀, 이혼과 별거의 증가, 그래서 가족이 반쪽이 되는 일, 부모와 자녀간의 세대차이에서 오는 갈등, 남녀간의 역할의 갈등, 가족원의 대화부족현상, 의무의 불이행, 서로 위해주고, 감싸주고, 부드럽게 대해주고, 위로해주고, 용서해주고, 사랑해주는 정서적 경험의 결여, 일시적으로 모는 장기간에 걸친 부모의 부재 (장기간의 해외출장등), 가족원의 죽음과 만성질병·입원과 같은 병리적인 상태 이런 모든 현상이 곧 가족해체의 형태들이라고 할 수가 있겠다.
그러면 왜 이런 가족해체현상이 생겨나는 것일까?
아주 중요한 것은 사회가 각기 가정의 가족원들의 행동을 규제할 수 있는 통제력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라고 할 수가 있다. 옛날에는 법률이나 제도보다는 관습이나 전통같은 것이 이 사회에 사는 모든 인간들의 행위를 구속하거나 통제하였던 것이다. 거기에 각기 가정은 그 자녀들에게 그런 관습과 전통을 가르치고 또 그들의 생활을 감독할 힘을 가지고 있었으나 오늘날 이런 기능들을 모조리 상실해 버리고만 것이다. 사회가 관습이나 전통이나 가풍같은 것을 통해 서 구성원들을 통제할 수가 없고 또 법이 있다해도 집행이 느슨한 상태에서는 사회자체의 통제기능은 매우 약화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사회해체의 원인인 것이다.
우리가 내면화해야할 가치가 무엇인지를 잊고 있는 한은 가족이고 사회고 해체에로 치닫게 되는 것이다.
작금의 가족 병리현상을 보면 부모도 자녀도 모두가 제정신이 아니다. 돈 때문이라고도 한다. 돈이면 다인가? 가족원들이 서로 모래알처럼 제각기 흩어져 있는 이 황량한 정신적 상황을 치유할 길은 무엇인가? 돈만이 전부가 아니고, 그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다는 생각을 갖게될 때에 우리의 상장은 비로소 개선될 것으로 본다. 그것은 바로 사랑과 용서다. 텅빈 보금자리, 빈껍질이 되어버린 가정을 사람과 이해와 용서로 채워주어야겠다. 김재은 <이화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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