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 위로 불길 순식간에 번져 … 장비 못지않게 대피 시스템 필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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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환(60·사진) 강남직업학교 소방행정과 교수는 최근 발생한 경기도 의정부 화재 현장을 직접 찾아갔다. 그는 “지하부터 꼭대기까지 순식간에 불길이 올라간 이번 의정부 화재를 계기로 초고층 건물 화재의 위험성에 대해 우리 사회가 좀 더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화재 출동만 수천번이나 경험한 31년 경력의 베테랑 소방관 출신. 지난해 현직을 떠났지만 대형 화재가 발생하면 만사를 제쳐두고 달려갈만큼 여전히 현장과의 밀착도도 높다.

 그는 초고층 건물의 특성과 관련해 “지하부터 꼭대기까지 연결된 배관이나 전선을 타고 불길이 순식간에 올라가기 쉽다”면서 “초고층 건물에서 화재가 발생하면 수 천에서 수 만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공황상태를 겪을 수 있다”고 말했다. 피난 통로가 좁아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릴 때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지적한 것이다.

 중요한 건 평소 대비 상황이나 훈련이지만 현재 부족한 점이 많다고 김 교수는 강조했다. 소방서가 예전에는 정기 점검해 대피 방법과 자율소방대 구성 등을 건물 관리자에 교육할 수 있었지만, 소방법이 완화되면서 건물 비상구가 어떻게 관리되는지 확인하기 힘들다고 했다. 그는 "특정 건물을 정해 보여주기식 훈련을 하는 것도 아쉽다. 소방훈련은 정해진 시나리오대로 흘러가는 게 아니라 다양한 변수를 고려해 ‘실전을 훈련 같이, 훈련을 실전 같이’ 해야 한다”고 말했다.

 소방 당국의 진화 방식도 문제로 지적했다. “하드웨어는 잘 갖춰졌지만 소프트웨어는 없다”는 게 그의 표현이다. 미국에선 건물의 내부 체계와 화재 위험 정보가 전산화돼 있어 재난 발생 때 소방당국 등의 대응이 빠를 수 있으나 한국의 경우 소방당국은 출동 신고를 받고 현장에 도착해서야 비로소 상황을 살피고 진화를 시작한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진화 과정 자체가 수십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은 전근대적 수준”이라고 꼬집었다. 의정부 화재도 상황실에서 건물 내부 정보 등을 미리 알고 지시를 내렸다면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며 안타까워했다.

 고층 건물 화재에 대비해 장비를 대폭 확충하자는 일부 전문가들의 제안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의견을 보였다. 초고층 건물은 바깥과 내부가 완전히 차단된 형태로 불길이 밖으로 나오기 어려운만큼 특수 사다리차나 헬기 등을 무조건 도입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스프링클러 등 기본 설비를 활용하면서 사람들을 체계적으로 대피하게 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도 의정부 화재 같은 재난은 또 일어날 것”이라며 “화재를 막기 위해 시설과 장비를 늘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평소 대비 시스템부터 점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종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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