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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미니카 연방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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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웬만한 세계지도엔 나타나지도 않는 나라의 귀빈들이 요즘 우리나라를 찾아온다. 도미니카 연방의 수상 「메리·유지니어·칼즈」 여사도 그 중의 하나다.
도미니카 연방(Commonwealth of Dominica)은 자칫 도미니카공화국과 혼동하기 쉽다.
우선 이름이 같고, 그런 곳이 있는 것을 발견한 사람도 같다.
「쿨룸부스」가 1492년 에스파뇰라도(지금의 도미니카공화국)를 발견한 이듬해 도미니카도를 찾아냈다.
모두 서인도제도 속에 포함되지만 도미니카 연방은 동쪽 끝 영국령 윈드워드 제도에 끼여 있다. 따라서 줄곧 영국령의 하나였으며 공용어도 영어를 쓴다. 그러나 도미니카공화국은 오랫동안 프랑스와 스페인의 틈에서 오갔으며 공용어도 스페인어다.
도미니카 연방은 주변의 손쉬운 지도에선 찾아볼 수도 없다. 1천2백만 분의 1로 줄인 지도에 겨우 2mm 크기로 표시되어 있다. 서울과 大田을 합친 크기만한 면적에 인구 8만명. 수도는 「로조」로 주민은 1만8천명.
조촐한 규모에 비해 GNP(국민총생산)는 빈약하다. 좀 묵은 통계지만 78년 수준으로 3천6백90만 달러, 1인당 소득은 4백59달러.
83년판 『세계연감』(더 월드 올머낵)에 따르면 수출은 1천5백80만 달러, 수입은 2천8백40만 달러. 수출품은 바나나, 코코넛, 바닐라, 라임(레몬과 비슷함) 등 주로 1차(농업) 산품.
지세가 대부분 산지이며, 바닷가에 면한 경작지에서 그런 과일들을 재배하고 있다.
이 나라는 1805년이래 영 연방이었으며, 1967년에 자치령. 지난 78년 11월3일 독립되었다. 영 연방의 일원이면서도 영 여왕이 원수가 아닌 공화제인 것이 특색이다. 대통령은 제한된 행정권만을 갖는다.
독립 1년을 맞은 해에 태풍이 휩쓸어 바나나 농장이 주저앉고 말았다. 태풍에 흔들릴 정도의 경제구조다. 경제불안은 정치불안을 불러들여 l980년, 81년 두 차례나 쿠데타 음모가 잇달았다. 한때는 미국의 큐 클럭스 단원이 침공하려는 기도도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80년7월 총선이 실시되고 지금의 자유당(보수파)이 압승을 거두었다. 「찰즈」 여수상은 바로 그 자유당의 당수.
자유경제를 표방하는 여재상의 정권은 쿠데타의 위협을 용케도 견뎌냈다. 이 나라의 군대 수는 l만8천명.
「도미니카」라는 국명은 바로 「안식일」에서 비롯되었다. 「쿨룸부스」가 1493년 이 섬을 발견한 날이 바로 11월 3일(일요일) 안식일이었다.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일도 그 날로 정했다.
수상이 멀리 지구의 반대쪽인 한국에까지 나들이하는 것을 보면 이 나라도 비로소 안식을 찾은 것 같다. 우리나라와는 북한보다 몇 달 앞서 독립과 동시에 수교국의 관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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