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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파른 크럭스도 술술 통과…극적 버저비터 찍은 '빙벽여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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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빙벽여제’ 송한나래가 11일 경북 청송 얼음골 인공빙벽 경기장에서 열린 국제산악연맹(UIAA) 2015 청송 아이스클라이밍월드컵 결승에 올라 빙벽을 오르는 모습을 위에서 찍었다. [사진 대한산악연맹]
송한나래 [사진 대한산악연맹]

한국 산악계에 깜짝 스타가 탄생했다. 주인공은 스물세 살의 겁없는 ‘아이스클라이머’ 송한나래(한국외대·아이더)다. 그는 지난 11일 막을 내린 ‘2015 청송아이스클라이밍월드컵’에서 결승에 진출한 남·녀 16명 중 유일하게 완등하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2011년 시작된 청송월드컵에서 국내 선수가 우승을 차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날 송한나래는 드라마 같은 명승부를 연출했다. 마지막 등반자로 나선 그는 얼음기둥을 겁없이 올라섰다. 공중에 대롱대롱 매달린 채로 각도가 수직을 넘어서는 오버행(overhang) 구간을 건너갔고, 루트 중 가장 어렵다는 크럭스(crux·가파르고 홀드 사이가 멀어 루트 중 가장 어려운 구간) 지점도 물흐르듯 통과했다. 앞선 선수들이 모두 크럭스 이전에 추락했기에 일찌감치 우승이 확정됐다. 그러나 그는 멈추지 않았다. 허리를 곧추세우고 힐끔 수직벽을 올려다보았다. 남은 시간은 30초 남짓, 관객들의 응원 소리를 들었는지 순식간에 수직벽을 치고 올라가 나머지 3~4개의 홀드(손으로 잡을 수 있는 홈)를 해치우고 아이스바일(얼음용 손도끼)로 버저를 힘껏 후려쳤다. 전광판에 표시된 남은 시간은 0분0초. 젖 먹던 힘까지 쏟아부으며 ‘버저 비터’로 챔피언에 등극했다. ‘피겨 여제’ 김연아(25), ‘빙속 여제’ 이상화(26)에 이어 ‘빙벽 여제’의 탄생을 알리는 순간이었다.

“작년 대회 때 ‘빨리 가야 한다’는 생각에 중간에 바일을 놓쳐서 너무 아쉬웠어요. 그래서 이번에는 ‘어떻게 해서든 완등하자’고 마음먹었죠. 이번 대회 예선, 준결승, 결승 모두 완등했는데 1등 한 것보다 그게 더 뿌듯하고 자신감이 생겨요”

송한나래는 초등학교 4학년 시절, ‘암벽 여제’로 알려진 김자인(27)을 보고 스포츠클라이밍을 시작했다.일산동고 동문인 김자인은 그의 멘토다. “언니를 보며 꿈을 키운다”고 했다. 또 스포츠클라이밍에서 아이스클라이밍으로 전향을 조언한 이는 현재 ‘좋은 라이벌’이 된 신윤선(35·노스페이스)이다.

국제산악연맹(UIAA)가 주최하는 아이스클라이밍월드컵은 한국을 비롯해 미국·유럽 등에서 열리며, 총 5개 대회를 합산해 세계랭킹을 가린다. 아이스클라이밍은 지난 소치올림픽에서 문화프로그램으로 선보였으며, 2018년 평창올림픽에서 시범종목으로 채택될 가능성이 열려 있다.

김영주 기자 humanest@joongang.co.kr
영상 = 마운틴 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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