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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준비생 두 번 울리는 교육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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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윤석만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윤석만
사회부문 기자

“이제 수료생이라는 딱지까지 얻었네요.”

 이화여대 10학번 A씨는 소위 취업준비생(취준생)이다. 지난 학기 졸업 이수학점을 모두 채웠지만 졸업을 미뤘다. 논문도 모두 썼지만 일부러 제출하지 않았다. ‘재학생’이라는 타이틀이 있어야만 취업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올해부터 학교 측이 졸업유예를 제한하면서 변수가 생겼다. 학교 측은 논문이나 채플 요건을 채우지 않는 방식으로 졸업을 미루는 학생을 수료생으로 분류키로 했다. ‘재학생’이 되려면 등록금의 일부를 내고 1학점 이상 수업을 들어야 한다. 학교는 궁여지책으로 수료생에게도 재학생과 똑같은 재학생 증명서를 떼주기로 했다. 하지만 A씨는 “재학생 신분을 돈으로 사게 하는 것과 다름없다”며 “취업도 힘든데 마음만 더욱 심란해졌다”고 말했다. 건국대와 서강대 등 다른 대학들도 이화여대처럼 졸업유예를 제한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취준생들이 졸업을 미루며 ‘재학생’ 신분을 유지하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 같은 사정을 뻔히 아는 대학들이 자기 학생들을 벼랑으로 내몰면서까지 이런 제도를 도입하려는 이유는 뭘까. 서울의 한 사립대 기획처장은 “재학생이 줄면 법적으로 필요한 교원 수도 줄고 전임교원 확보율이 높아진다”며 “교육여건을 개선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라고 말했다.

 올해 교육부가 새롭게 도입한 구조개혁평가의 지표는 12개다. 이 중 배점(만점 60점)이 가장 높은 지표는 전임교원확보율(8점)이다. 교원 수를 늘리는 것은 한정돼 있으니 재학생 수를 줄여야만 지표가 높아진다. 지난해 재정지원제한 대학 평가에선 0.1점 차이로 희비가 엇갈릴 만큼 점수 차가 적어 대학들은 조금이라도 점수를 높이는 데 혈안이다.

 지난 연말 한국외대가 사전 예고 없이 상대평가를 소급 적용하려다 학생과 갈등을 빚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교육부가 학생평가(4점) 지표에서 ‘성적 분포의 적절성’을 따지도록 돼 있기 때문이다. 지난 2일 한국외대 총학생회는 상대평가 소급적용에 대한 가처분 신청을 하는 등 학교와 학생들의 갈등은 법적 분쟁으로까지 번졌다.

 따지고 보면 근본 원인은 교육부에 있다. 1995년 대학 설립 준칙주의를 도입해 부실대학을 양산한 교육부는 제때 구조개혁을 하지 못한 책임을 대학들에 돌리며 줄 세우기로 퇴출을 유도하고 있다. 서울의 한 사립대 총장은 “대학의 특성을 살려 경쟁력을 강화한다면서 단 몇 개의 지표로 칼질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교육부는 점수로 대학을 줄 세우고 다급해진 대학들은 학생들을 쥐어짜는 현실이다. 대학 캠퍼스에는 생명과도 같은 자율이 온데간데없이 증발했다.

윤석만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