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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영화 '국제시장' 표준근로계약서, 진정한 대박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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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윤제균 감독의 영화 ‘국제시장’이 13일 1000만 관객을 돌파했다. 한국영화로는 11번째 기록이다. 한때 정치적 논란에 휘말리기도 했지만 산업화 시대 가족을 위해 희생해온 아버지 세대에 대한 헌사가 공감을 자아내며 흥행에 성공했다. 윤 감독은 2009년 ‘해운대’에 이어 두 편의 1000만 영화를 내놓는 진기록을 세웠다.

 그러나 이보다 더 주목할 기록은 제작비 140억원의 블록버스터인 이 영화가 제작 스태프들에 대한 표준근로계약서를 이행한 첫 번째 대작 영화라는 점이다. 표준근로계약의 내용은 ‘하루 12시간 이상 촬영 제한, 12시간 넘길 시 초과수당 지급, 일주일에 1회 휴식일 보장, 4대 보험 가입’이다. 사실 그간 문화산업 현장은 실질적인 ‘노동법의 사각지대’와 다름없었다. 이런 당연한 최소한의 권리조차 지켜지지 못했다. 젊은 스태프들은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기는커녕 일명 ‘열정페이’란 이름으로 저임금과 부당노동행위를 감수해야 했다. ‘열정을 돈으로 따지지 말라. 열정을 불태울 기회를 줬으니 돈은 덜 받아도 된다’는 이상한 논리다. 젊은 시나리오 작가가 백주대낮에 굶어 죽는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지는가 하면, 능력 있는 창작자들이 먹고살기 위해 현장을 떠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충무로 스태프들의 오랜 노력으로 지난해 드디어 표준근로계약서를 이행한 첫 영화 ‘관능의 법칙’이 나왔다. ‘국제시장’은 더 나아갔다. 기획 단계부터 제작의 전 단계에 표준근로계약을 적용했고, 막내 스태프들까지 예외를 두지 않았다. 1000만 돌파에 따른 보너스도 고루 지급할 예정이다. ‘국제시장’의 사례는 문화산업의 새로운 역사를 썼다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

 윤 감독은 “표준근로계약을 통해 순제작비가 3억원가량 상승했지만 현장 분위기가 좋아지고 10분도 허투루 쓰지 않는 등 철저한 준비로 제작에 플러스가 됐다”고 말했다. “예전에 이틀 밤을 넘기면서 촬영할 때는 영화라는 게 사람 할 짓이 못 된다고 느꼈는데 이번에는 영화를 평생 직업으로 가져도 되겠다 싶었다”고도 했다. 그가 이럴진대 평범한 대다수 스태프들이야 더 말할 것도 없다. 이 영화의 투자배급사인 CJ E&M은 ‘국제시장’을 필두로 2013년 8월 이후 투자배급이 결정된 모든 작품에 표준근로계약을 적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실 이런 노동인력의 ‘갑을관계’ ‘착취구조’ 문제는 충무로뿐 아니다. 방송 드라마, 공연에서 최근 유명 디자이너의 ‘청년착취’ 논란이 불거진 패션업계까지를 망라한다. 한류나 창조경제를 이야기하지만 스태프들의 기본 권리 찾기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건강한 문화생태계 조성은 요원한 얘기일 것이다. 다행히 최근 몇 년간 정부와 업계의 노력으로 각 영역마다 ‘표준계약서’ 제정에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문제는 그것의 현실 적용이다. ‘국제시장’은 업계의 자율적 상생과 공존이 영화의 완성도와 ‘대박’으로 이어진 모범사례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