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공 여객기의 송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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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한국으로 납치되어 온 중공 여객기의 처리가 한국과 중공이 승객·승무원, 그리고 기체를 조속히 중공으로 돌려보낸다는데 합의함으로써 가장 바람직한 선에서 해결되고 있다.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특히 이번 사건의 처리에서 가장 까다로운 문제로, 어쩌면 한-중공 쌍방서 얼굴을 붉히는 정도의 의견대립을 보일지도 모른다고 생각되었던 납치범들의 문제도 일단 한국에서의 재판으로 낙착이 된 것은 앞으로 한-중공관계를 위해서나 국제적인 판례로 보아서 최선의 해결책이라고 할 만하다.
처음부터 관심은 납치범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쓸려 있었는데 우리 국내법으로 그들을 다스리기로 한 것은 우리가 가입하고 있는 「항공기 납치 방지에 관한 국제협약」을 존중하면서 문제를「한국적」으로 해결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승객·승무원, 그리고 기체를 조속히 중공에 돌려주고, 납치범들을 송환하지 않음으로써 인도주의 정신에 충실하고, 납치범들을 국내법에 따라 재판에 회부하여 응분의 벌을 받게 함으로써 한국이 항공기 납치의「성역」이라는 세계 여론의 비난을 면하게 된 것이다.
우리의 관심은 이제 제2단계로 옮겨졌다. 그것은 이번 사건을 처리하기 위한 한·중공간의 교섭에서 생길지도 모르는 외교적인 부산물이다.
중공은 북한을 도와 6·25에 참전하여 우리의 통일을 실현직전에 가로막은 나라다. 휴전협정 조인 국의 하나인 중공은 기술적으로는 아직도 우리와 전쟁상태에 있다.
그런 역사적인 배경 때문에 중공 건국 후 34년이 지난 오늘까지 서해 하나를 끼고 있는 한국과 중공은 한번도 직접적인 공식접촉을 가져 본 일이 없다. 두 나라간에 해결해야 할 문제가 생기면 미국 일본 같은 제3국을 사이에 두고 간접대화를 했을 뿐이다.
오늘의 중공은 6·25때의 중공이 아니다. 모택동의 중공을 빠른 걸음으로 극복한 등소평의 실용주의적인 중공은 미국·일본·서구 같은 한국의 우방과 군사동맹국가들에 문호를 널리 개방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소련·중공의 3각 관계에서 북한이 갖는 균형 추로서의 역할 때문에 중공은 한국의 화해제의에 언제나 냉담한 태도를 보였다. 특히 작년 한 해 동안 북한과 중공의 수뇌들이 교환 방문을 하고 부 터 중공의 대한 자세에는 평양의 입김이 더욱 강하게 작용하여 한·중공간의 간접적인 교역까지 중단되어 버렸다.
이런 배경에서 중공의 민항 총 국장이 이끄는 대표단이 전격적으로 한국을 방문하고, 우호적인 분위기에서 교섭이 진행되고, 결과도 쌍방이 만족할 만하게 나왔으니 이런 일이 하나의 계기가 되어 한국과 중공간에 접촉의 길이 열리고, 또 관계가 개선되기를 바라는 것도 그렇게 무리하다고만 말할 수는 없겠다.
더군다나 이번에 한국과 중공이 상대방을「중화인민공화국」,「대한민국」이라는 공식 이름으로 부르게 된 것은 결코 작은 진전이 아니다.
서울에 나타난 중공사람들을 보고 우리도 그들의 머리에 뿔이 달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고, 그들도 우리가 꼬리를 가진 괴물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우리가 서로 생소한 관계에 있 는 것은 일반적으로는 서로 다른 두 사회체제 때문이오, 구체적으로는 북한의 존재 때문이라는 것을 새삼 되새기게 되었다. 중공 사람들도 같은 생각이었으리라고 믿는다.
그러나 서울에 온 중공사람들은 중공의 대한정책을 좌우할 처지에 있지 않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그들은 중공정부의 전체적인 대한 자세의 범위 안에서 우리와 대화하고, 웃고, 그리고 한국을 관찰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중공정부의 대한 자세라는 것은 한반도에 이해가 얽힌 모든 나라들의 역학 관계로 좌우되는 것이지 우리가 그들의 승객과 대표들에게 보이는 극진한 호의 하나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영토주권과 체통이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 불의의 재난을 당한 중공 사람들에게 협조를 하는 것은 그들의 한국 관에 크고 작고간에 변화의 씨를 뿌리는 효과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의 씨가 자라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때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명심해야 하겠다.
한국과 중공이 지리적으로 얼마나 가까운 거리에 있는 이웃인가가 이번에도 확인되었다. 그래서 이번과 같은 제2, 제3의 사건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없다.
두 나라간에 기왕 직접교섭이 이루어지고, 공식호칭으로 상대방의 존재를 인정했으니 이것이 한-중공 관계개선의 돌파구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 우리의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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