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극물의 판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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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서울 을지병원환자 염필수씨 독살사건은 인명을 해치는 독극물의 관리가 허술하기 짝이 없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또 다른 사회적 충격을 안겨주었다.
공업용으로 많이 쓰이는 철산염등 독극물은 인체에 미치는 치명성 때문에 제조에서 판매에 이르기까지 그 취급·관리를 철저히 하도록 법이 정하고 있다.
63년에 개정된 「독물및 극물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독극물영업자가 이것을 팔 때는 독극물의 명칭및 수량·판매 연월일을 기재하게 되어 있으며, 79년12월28일엔 다시 사는 사람의 주소·성명은 물론 주민등록번호·상호및 용도도 명시하도록 해놓았다.
더우기 독극물에 관한 법률은 모법뿐 아니라 시행령및 시행규칙을 통해 독극물의 표시, 저장 또는 진열에 관해 규정하고 있으며 특정독물의 취급 및 사용상의 주의사항도 상세히 규정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조항이 실제로는 지켜지고 있지 않은데 있다.
염씨를 살해한 김여인의 경우도 그렇지만 전남 함평에서 지병이 있는 남편을 살해한 30대 주부 역시 손쉽게 독약을 입수할 수 있었던 것을 보면 독극물의 취급관리가 얼마나 소홀한지를 금방 알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엔 등록된 독극물판매업소가 9백36개소며 이밖에 무 등록업소도 약5백군데나 된다고 한다.
무허업소가 법이나 규정을 지키지 않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등록된 업소 가운데도 시설기준은 물론 자격 있는 취급자를 채용하고 있는 업소가 거의 없다시피한 실정이다.
김여인이 청산가리를 산 구로동의 한 화공약품상회에서 1km이하의 소량은 팔지 않는다고 수백명의 인명을 해칠수 있는 많은 양을 팔았다는 얘기에는 그저 어안이 벙벙해질 뿐이다.
독극물의 생산및 유통과정이 허술하다는 논의가 나은지는 오래된다. 약품에 대한 정확한 지식이 없는 점원들이 아무에게나 독극물을 팔다가 적발되는 일이 종종 일어났으나 그것은 오히려 지엽적인 사고에 불과했다.
3년전 환경청의 생산업소 점검결과를 보면 독극물의 위험은 대량 제조업소및 수입업소에서부터 비롯되고 있음이 드러났다. 약국이나 도매상에서 취급하는 소량의 독극물은 몇몇 사람의 인명피해에 그치지만 제조업소의 「취급부주의 는 하천이나 연해 안으로 흘러들어 환경상태를 근본적으로 망치는 광역오염원이 될수 있으며 폭발·화재등 대형사고를 일으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법이 아무리 잘되고 규정이 아무리 잘 짜여져 있다 해도 지켜지지 않는다면 무슨 쓸모가 있겠는가. 독극물에 관한 법률의 경우 특히 그렇다.
파는 사람이 화공·화학·농화학·약학을 전공한 학사출신을 채용 토록한 규정은 아무래도 현실적으로 지켜지기 어려운 점이 있으리라고 여겨진다. 그러나 비록 무허가 업소라 해도 사가는 사람의 주민등록증 대조나 용도 확인 의무등을 이행 못할 이유는 없을 것 같다.
물론 단속이 허점 투성이였음도 인정해야 한다. 독극물 제조업소와 수출업소는 환경청에, 판매업소는 관할시도에 등록을 하도록 되어있으나 실제로 단속을 하는 관서는 전문지식과 동떨어진 구청·보건소등에 맡겨지고d있어 책임한계가 모호할 뿐 아니라 단속의 실효도 거두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무에게나 법이 정한 확인 절차를 거치지 않고 독극물을 판 상인들의 무분별만을 나무랄 일이 아니다. 인명을 해칠수 있는 독극물을 시중에서 얼마든지 살수 있다는 것은 어쨌든 가벼이 보아 넘길 일이 아니다. 독극물만이 아니고 위험물 취급 전반에 걸쳐 법의보완에서부터 단속의 강화에 이르기까지 철저한 대책을 세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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