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산사 원통보전 대들보 악기로 되살아났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5면

4월 화재를 당한 낙산사의 대웅전 격인 원통보전의 대들보가 서양 악기로 되살아났다.

강원도 강릉 지역에서 현악기를 제작하고 있는 임창호(71)씨가 타다 남은 원통보전의 대들보를 이용해 첼로와 바이올린을 만들어 최근 사찰에 기증한 것. 서라벌 예대 공예과를 졸업한 임씨는 40여 년간 바이올린.첼로.비올라 등 현악기만을 제작해온 전문가다. 임씨는 수령 최소 50년 이상의 나무로 만들어진 대들보가 그대로 버려질 것을 우려해 6월 낙산사를 찾았다. 그는 사찰 측에 "대들보로 현악기를 제작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했다. 임씨는 고목(古木)인 데다 오랜 기간 건조된 원통보전 대들보를 이용할 경우 명기(名器)를 만들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서양 악기의 경우 대부분 가문비나무와 단풍나무 등 외국산 나무로 제작하지만 국산 소나무로도 얼마든지 훌륭한 악기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임씨의 설명이다. 임씨는 지름 60~80㎝, 길이 6m 남짓한 크기의 대들보에서 불에 탄 겉 부분을 톱으로 모두 잘라냈다. 이어 옹이가 없는 부분으로 3㎝ 두께의 사각형 모양 악기 재료목을 만들었다. 여기에다 일본에서 수입한 최고급 옻칠을 하는 등 하루 10여 시간씩의 고된 작업 끝에 첼로와 바이올린을 완성했다. 옻칠 구입비 등 제작에 소요된 300여만원은 자비로 충당했다.

임씨는 "낙산사 원통보전의 원형이 사라진 것이 안타까워 천년고찰의 얼을 되살리자는 소박한 마음에 내가 가진 재주를 조금 부려봤다"며 "재질이 뛰어나고 소리도 아주 좋아 첼로는 최소 3000여만원, 바이올린은 1500여만원 이상의 가치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임씨는 악기 진열장도 낙산사 피해목으로 만들어 함께 기증했다. 낙산사는 이들 악기를 의상기념관에 전시해 일반인에게 공개하고 있다.

양양=홍창업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