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촌의 냉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할머니, 무얼 하고 계셔요?』
『냉이를 캐고 있다오』
따스한 봄볕 아래 연녹색의 풀들이 윤기 흐르듯 돋아나 있다. 이웃집 할머니가 아파트 잔디밭에서 허리를 굽혀 냉이를 찾아 캐고 계셨다. 들도 산도 아닌 잔디밭 사이에 드물게 나있는 냉이를 찾기란 보물찾기나 다를 바 없는 것 같았다.
『할머니, 이것도 냉이지요?』
『그렇군』
『하도 심심해서 나물 캐러 나왔지』
할머니는 풀냄새를 맡으며 나물 캐는 즐거움으로 기쁜 표정이시다. 자연은 봄이면 어김없이 푸른 향연을 베풀어놓고 들에서 산에서 손짓한다.
갈 길이 바쁘지 않다면 느긋하게 풀 냄새를 맡으며 나물 캐는 일에 동참하여 재미를 맛보고 싶은 심정이었다.
나는 도시에서만 자라온 터라 나물 캐는 일을 해볼 기회가 없었으므로 봄이면 쑥쑥 돋아나는 달래니, 씀바귀니, 냉이 따위의 풀들의 생김새도 실은 그림으로 보고 채소가게에서 자세히 익혀 알고있는 정도다.
올해도 초봄에 채소가게에서 냉이를 한 줌 사다가 냉잇국을 끓여 식탁에 올렸다.
『얘들아, 이건 냉잇국, 봄 국이란다.』
『봄 국』하며 반길 줄 알았는데 한번 떠먹고는 『맛도 없네요』하는 것이다.
내가 끓인 냉잇국이 맛이 없다는 것도 실망이려니와 봄 국이란 말에 흥미조차 없으니 더욱 그러하다. 우리 아이들도 도시의 메마른 생활에 젖어 자연의 변화에 무디고 친근하지 못하다.
다음 주말에는 들이든 산이든 나가서 아이들과 같이 풀 냄새를 맡으며 냉이도, 씀바귀도, 쑥도 캐봐야겠다.
살랑살랑 부는 봄바람을 스치며 나물 캐기의 즐거움을 맛보며 봄 풀들을 만나도록 해야겠다.
어린 날 봄의 추억도 만들고 인생의 가장 좋은 벗, 자연을 벗삼아 주어야겠다.

<서울시 강남구 반포본동 반포아파트 97동 609호>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