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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나라살림] 상. '5% 성장' 빗나가면 적자 훨씬 커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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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나라살림이 걱정이다. 정부가 돈쓸 곳을 자꾸 늘리고 있지만, 세금은 잘 걷히지 않아 재정에 구멍이 커지고 있다. 정부는 내년 예산을 짜면서 균형 잡힌 살림을 포기하고 적자 국채를 9조원어치나 발행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나랏빚은 급속히 불어나고 있다. 앞으로 나라살림은 어떻게 되는 것인지 3회에 걸쳐 살펴본다.

내년 예산 의미·문제점
고유가에 건설경기 위축 등 악재 널려
국가채무 280조 … 정부선 "감당 가능"

정부가 내년에는 작심하고 처음부터 빚을 내 나라살림을 꾸리기로 했다. 내년 예산안에 처음부터 포함시켜 발행할 적자 국채 9조원은 사실상 사상 최대 규모다. 1999년 10조4000억원의 적자 국채가 발행된 적이 있지만, 이는 외환위기에 대처하는 예외적 상황에 따른 것이었다. 문제는 이 같은 구조가 갈수록 심해질 것이란 데 있다. 당장 내년 경기가 정부 기대만큼 회복되지 않으면 적자가 훨씬 더 불어난다.

◆ 적자 국채 발행=일반회계 기준으로 내년에 정부가 쓸 예산은 145조7000억원이다. 그러나 이 가운데 세수로 충당할 수 있는 부분은 130조4000억원밖에 안 될 것으로 정부는 추산한다. 나머지 15조3000억원을 마련키 위해 정부가 낸 고육책이 적자 국채 9조원 발행과 6조3000억원의 공기업 주식 매각이다.

문제는 내수 세수전망도 올해만큼 밝지 않다는 데 있다. 정부는 소비를 중심으로 경기가 회복돼 내년에는 5% 성장이 가능할 것이란 전제 아래 세수를 전망했다. 부가가치세와 소득세 수입이 크게 늘 것으로 본 이유다. 그러나 고유가 지속, 8.31 부동산 대책으로 인한 건축경기 위축, 기업의 투자부진 등 악재가 널려있다. 공기업 주식 매각도 예정대로 이뤄질지 미지수다.

더욱이 정부가 추진하는 소주세율과 도시가스(LNG) 특별소비세 인상에 대해 노무현 대통령이 재검토 뜻을 내비친 것도 정부로선 고민이다. 이게 무산될 경우 다른 곳에서 1조원 안팎의 세수 확보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 쌓이는 나랏빚=국제통화기금(IMF) 기준으로 국가채무는 2000년까지만 해도 111조원에 그쳤다. 그러나 올해 국가채무는 244조원을 돌파할 예정이고, 내년에는 280조원에 달한다. 정부는 이 정도의 국가채무는 걱정할 수준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나랏빚 평균 비율은 76%로 한국보다 훨씬 높다는 것. 기획예산처 변양균 장관은 "국민으로부터 세금을 거둬 갚아야 할 적자성 빚은 전체의 43.6%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외화자산이나 융자채권 등을 정부가 갖고 있는 금융성 빚이라 우리의 재정능력으로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나랏빚이 늘면 그만큼 후손에겐 큰 짐이 된다. 이는 성장잠재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으로도 작용할 수 있다. 한양대 나성린 교수는 "빚의 규모는 물론이고 늘어나는 속도가 빨라 재정운용을 좀 더 알뜰하게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복지 비중 증가=복지 비중을 꾸준히 높이고 사회간접자본(SOC) 건설이나 농어촌 지원 등에 대한 예산 지원은 줄이겠다는 게 정부의 중장기 재정 계획이다.

SOC 투자는 어느 정도 이뤄진 데다 앞으로는 민간자본을 끌어들여 건설하겠다는 것이다. 대신 정부는 복지예산을 늘려 양극화 해소에 주력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SOC 투자나 지역개발 예산 등은 경기에 직.간접적으로 큰 영향을 줄 수 있다. 민간자본이 기대만큼 참여하지 않을 경우 건설경기가 위축돼 경기회복 지연으로 이어질 수 있다.

정부가 주력하는 또 다른 분야는 국방과 연구개발(R&D)이다. 국방예산은 정부가 추진하는 군 현대화 등 국방개혁을 뒷받침하기 위해, R&D 예산은 성장잠재력 확충을 위해서다.

김종윤 기자

어디에 얼마나 쓰나
극빈층 지원 22% 늘려 5조4000억
SOC 투자 첫 감소 … 공무원 인건비는 8.2% 증가

정부는 양극화 해소를 위한 복지예산과 미래 성장동력을 확충하기 위한 연구개발 예산을 대폭 늘렸다.

그러나 경제성장을 높이기 위한 수송.교통 등 사회간접자본(SOC)과 지역개발 예산은 올해보다 2.7% 줄었다. 당장 내년 한 해 성장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예산이 줄면서 정부가 예상한 5% 실질 경제성장을 달성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 사회복지, 연구개발 예산 급증=극빈층(기초생활보호대상자)에 지원하는 예산이 5조4000억원 책정돼 지난해(4조4000억원)보다 22.2% 늘었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는 이에 따라 올해 143만 명에서 2006년 162만 명으로 19만 명 증가한다.

저출산 대책도 본격 추진돼 불임부부에 대한 시술 비용을 정부가 지원한다. 내년에 총 1만4000명에 213억원이 지원될 예정이다.

내년 연구개발 예산은 올해보다 15% 늘어난 8조9729억원으로 책정됐다. 과학기술진흥기금에서 국채를 발행해 여기서 조달한 돈을 연구개발 예산으로 사용한다. 특히 신기술의 주도권 선점을 위해 기초.원천 연구 지원을 강화한다. 전체 예산에서 기초연구용 예산의 비중이 올해 22%에서 내년에는 24%로 올라간다.

◆ SOC 투자는 줄여=1990년부터 2003년까지 SOC 예산은 연평균 16.8% 늘었다. 이 결과 90년에 비해 현재 4차로 이상 도로는 3.7배, 복선전철 1.3배, 항만 2.4배 등이 늘었다.

이 때문에 정부는 내년에 도로 등 SOC와 지역개발을 위한 지출을 줄였다. 대신 정부는 민자를 유치해 기반시설을 계속 확충할 계획이다.

국가 균형발전을 위한 행정중심 복합도시(올해 75억원→2006년 353억원), 공공기관 지방 이전 및 혁신 도시건설(신규 20억원)에 대한 지원은 확대된다.

내년 공무원 총 인건비는 20조5917억원으로 올해보다 8.2% 증가한다. 이는 임금 상승분(3%)과 인력 증원, 호봉 승진 등 자연 증가분을 합한 것이다.

◆ 이색 사업=북한의 5세 이하 아동과 산모 등의 영양을 개선하기 위해 250억원의 예산이 편성됐다. 내년에는 금연 상담 전화가 개설돼 12억원이 지원된다. 남극대륙 기지를 건설하기 위해 10억원이, 실종 아동찾기 전문기관을 설립하는 데 8억원이 쓰인다. 5억1800만원을 들여 자동차 선팅 단속기기를 도입하며, 유럽연합(EU)이 추진하는 위성위치확인시스템인 '갈릴레오 프로젝트'에 참여하기 위해 초기 납입금 64억8000만원을 투입한다.

교도소 경비시스템을 무인경비시스템으로 전환하기로 하고 내년에는 12개 교도소에 총 100억원의 예산을 배정했다. 희귀난치성 환자 및 가족을 위한 쉼터를 10억원을 들여 설립한다.

김종윤 기자

어디서 얼마나 걷나
근소세 12.4% 늘어 서민 부담 가중
법인세는 9.4% 감소 … 지방세 세수 불투명

내년 나라살림을 위한 세수는 상당 부분 서민 주머니에서 나와야 할 것으로 보인다. 기업이 내는 법인세는 줄어드는 반면 개인이 부담하는 세금은 크게 늘어난다. 세수 전망이 갈수록 불투명해지는 것도 문제다. 8.31 부동산 대책이나 환율.주가의 움직임에 따라 실제 세수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 가계 부담 가중= 봉급 생활자들이 내는 근로소득세가 내년 12.4% 늘어날 것으로 예상됐다. 이자소득세와 양도소득세도 두 자릿수 증가율을 기록할 것으로 추산됐다. 이자소득세 증가는 금리가 올라가기 때문이고, 양도세는 8.31 부동산 대책으로 실거래가 과세가 확대되기 때문이란 게 정부의 설명이다. 소비가 살아나고 있어 부가가치세 수입도 14.2% 늘어날 것으로 정부는 내다봤다. 12월에 첫 부과되는 종합부동산세는 올해 7000억원에서 내년엔 1조200억원으로 불어난다. 반면 법인세는 올 초 세율을 2%포인트 내린 효과가 내년에 본격적으로 반영돼 9.4%나 줄어들 것으로 예상됐다.

◆ 불투명한 세수 전망=올해 세수는 당초 예산보다 4조6000억원이나 덜 걷힐 것으로 정부는 내다봤다. 이는 연초 달러당 1150원으로 잡은 환율이 상반기 1017원으로 떨어져 관세와 수입분 부가세 수입이 3조4000억원이나 구멍난 게 주된 원인이다. 경기 회복이 늦어져 부가세.특소세 수입도 예상보다 1조2000억원가량 줄었다.

내년에도 세수는 더욱 불투명하다. 지방세가 특히 그렇다. 행정자치부는 내년 지방세가 올해보다 3~5% 늘어난 35조200억~37조7000억원 정도로 전망하고 있다. 그러나 8.31 대책으로 부동산 거래세율이 1%포인트 떨어진 데다 거래가 급감할 수 있어 지방세 세수가 얼마나 될지는 각 지자체조차 가늠하지 못하고 있다. 경기 회복이 늦어지면 부가세 수입도 예상보다 줄어들 공산이 크다. 이 경우 정부 보유 주식을 더 팔든가 국채를 추가 발행해 적자를 메우는 게 불가피해진다.

정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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