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비트] 하바 알베르스타인 '더 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5면

예부터 사람의 이동은 문화의 퓨전(뒤섞임)을 가져왔다. 이를 월드뮤직만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경우도 드물다. 2천년 이상 방랑하던 유대 민족에게는 세계 여러 지역의 문화가 합쳐지면서 새로운 형태의 문화가 생겨났다.

방랑 민족 유대인의 음악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먼저 '아시케나지'는 발트해에서 흑해까지 광범위한 유럽 스타일의 음악을 말한다. '세파르딕'은 스페인.그리스.터키 같은 지중해 연안의 음악을, '미즈라히'는 아랍국가에서 살던 유대인의 음악을 의미한다. 이 음악들은 모두 그 나라(지역)에 살던 유대인 공동거주지에서 태어났다. 이 가운데 아시케나지는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미국으로 건너간 3백만 명의 유대인과 함께 아메리카대륙에 뿌리를 내렸다.

미국의 월드뮤직 가운데 하나인 클레즈머 음악은 아시케나지의 대표적인 스타일로, '미국 근대음악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조지 거슈윈의 '랩소디 인 블루'와, '스윙재즈의 제왕' 베니 굿맨의 여러 작품에 배어 있다.

'이스라엘의 프리마돈나' 하바 알베르스타인과 미국 출신 그룹 클레즈마틱스가 함께 한 '더 웰(98년작)'앨범은 이디시어(히브리어에 독일어.러시아어.동유럽언어가 혼합된 언어)로 쓰인 시에 알베르스타인이 곡을 붙인 작품들로 채워졌다. 그는 '이디시 음악의 여왕'이란 칭호에 걸맞게 각각의 시에 꼭 어울리는 곡을 만들었다. 그룹 클레즈마틱스는 진보적인 클레즈머 음악을 선보이는 팀으로 그간 바이올린의 명인 이작 펄만, 아방가르드의 최고봉 존 존과 협연한 바 있다.

타이틀곡 '더 웰'은 바이올린 전주에 이어 왈츠 풍의 아코디언이 매력적인 클레즈머 음악으로 인도한다. '벨헤스 메이들 스넴트 아 보헤르(남자 친구가 있는 어느 소녀)'는 쿵짝거리는 트럼펫과 집시풍의 현란한 바이올린 연주, 빠른 속도로 절정을 향해 치닫는 리듬이 흥겹다. '디 골데네 파베(황금공작)'는 이 음반에서 가장 아름다운 곡. 우아하면서도 슬픈 알베르스타인의 목소리에서 그가 얼마나 뛰어난 가수인가를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경쾌한 곡에선 신천지에 대한 기대가, 느린 곡에선 이민과 유랑의 서글픔이 느껴진다. 오랜 역사가 농축된 클레즈머 음악을 들을 때면 다시 한번 월드뮤직은 '시간의 화석'이란 말을 실감하게 된다.

송기철<대중음악평론가.mbc fm '송기철의 월드뮤직' 진행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