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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왜 게으르니" 대신 "네가 지각할까봐 걱정돼" 얘기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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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길이 얼었는데 자전거가 말이 되느냐?” 일요일에 자전거를 타고 교회에 가겠다는 중학생 아들에게 아버지가 소리를 버럭 질렀다. 예배 시간이 다 되도록 꾸물댄 아들이 못마땅했던 아버지가 화를 낸 것이었다. 아들은 현관문을 열어젖힌 뒤 아버지의 말을 무시하는 태도로 자전거를 끌고 나가려 했다. 아버지의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며 일촉즉발의 상태로 치달았다. 성영주(47·여·서울 강남구)씨 집에서 최근 일어난 이 작은 소동은 성씨가 중재에 나서며 평화롭게 수습됐다. “여보, 당신이 화난 건 얘가 다칠까봐 그런 거지?” 남편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들, 아빠는 네가 다칠까봐 그러는 거잖아.” 가만히 서 있던 아들은 현관문을 닫고 자전거를 제자리에 가져다 놓았다.

 성씨도 예전엔 아이와 충돌이 잦았다. 백일 때부터 영어 테이프를 들려주고 사립 초등학교에 보내며 매달 사교육비만 200만원 썼다는 그는 “아이에 대한 집착이 강했다”고 말했다. 과도한 관심은 신경질적인 대화로 이어지기 십상이었다. “열심히 공부 안 하면 노숙자 된다” “책 안 보면 아무것도 못한다”처럼 은근한 협박이 담긴 말을 쏟아내기 일쑤였다.

 성씨는 자신의 문제점을 발견한 뒤 한국비폭력대화법(NVC)센터 기린부모학교에서 배려와 공감을 중시하는 대화법을 배웠다.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비폭력 대화법’으로 불리는데, 감정과 사실을 분리해 말하는 게 핵심이다.

 자녀가 늦게 일어나면 ‘왜 이렇게 게으르냐’고 평가할 게 아니라 ‘아침 9시에 일어났네’라고 사실만 말하는 식이다. NVC센터 이윤정 부소장은 “상대를 비난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얘기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다음은 자신의 느낌을 솔직히 말하고 원하는 것을 부탁한다. “엄마는 네가 지각할까봐 걱정돼. 30분만 일찍 일어나면 어떻겠니”라고 말하면 된다. 성씨는 “‘내 아들’이 아니라 독립된 인격체라고 여기니 관계가 좋아지더라”고 귀띔했다.

 성씨와는 달리 주지연(38·여·서울 관악구)씨는 평소엔 화를 꾹꾹 참다 가끔 화산처럼 폭발하는 엄마였다. 그는 “무슨 실수든 받아주던 엄마가 갑자기 화를 내니 아이가 불안해했다”고 설명했다. 요즘 주씨는 무조건 화를 참진 않는다. 감정을 솔직히 말하고 원하는 것을 자녀에게 차분히 알려준다. 주씨는 “자녀도 엄마가 원하는 것을 알아야 공감의 소통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청소년을 위한 비폭력대화』 저자인 김미경씨는 “자녀가 ‘먹을 게 없다’고 말하면 대부분 나무라는데 원하는 게 뭔지를 먼저 생각하면 ‘뭘 먹고 싶니?’ 하고 묻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순간의 감정에 집착할 게 아니라 원하는 걸 터놓고 얘기하는 공감의 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윤석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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