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상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2년전 낙향할 때 1년에 책한권씩 내기로 작정했어요. 그래서 틈틈이 원고 쓰고 주말에는 산에 오르더니 몸과 마음이 가뿐해 예나 지금이나 바쁘게 돌아가니 늙은 줄도 모르고 즐겁기만 해요.』
정치일선에서 쫓길 때보다 훨씬 건강한 모습의 한술 이효상씨 (77·대구시대명동692).
야인으로 집필생활에 여념이 없는 한솔은 그 동안 틈틈이 써 모았던 원고를 정리해, 「정치와 종교」를 2집까지 펴내고 제3집 출간을 서두르고 있다.『정치를 그만 뒀어도 너무 바빠 28년 동안 맡아오던 경북중·고교 동창회장직을 81년5월에 물러났어요. 그러나 경북산악회회장직은 80세까지 맡아달라는 후진들의 부탁을 뿌리치지 못해 31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어요.』
경북산악연맹에 매달 2,3회정도 나가 젊은 산악인들과 세상살이를 얘기하는 것도 한솔이 즐기는 소일거리다.
『매주 일요일 아침 대구를 떠나 지프편으로 3시간만이면 지리산기슭에 닿지. 해발5백m까지 오르고 태고의 수림 속에서 밥지어 먹고, 자연에 파묻히면 부러울 것이 없어요.』57년간 계속해온 한솔의 등반길은 낙향 후 당일코스로 지리산을 즐겨 찾는다.
바깥 출입을 하지 않을 땐 10평 남짓한 서재에서 집필을 하거나 서예에 몰두한다.
그동안 취미 삼아 붓을 든 각품 71점을 모아 지난해 11월대구시민회관 전시장에서 시화전을 열어 수익금 2천4백여만원을 희망원과 가톨릭근로자회관 등 복지시설에 기부한 것이 야인생활의 가장 큰 보람이라고 했다.
「충과 효는 마음의 중심이야. 부모님이 날 낳아 주시고 부모님이 계심으로써 내가 존재하는 만큼 가장 소중한 것은 부모님의 사랑이요, 스스로 속이지 말고 자신에게 충실하는 것이 인간의 도리야.』유교정신의 바탕인 충효사상을 좌우명으로 삼아온 한솔은 지금껏 양심을 다해 살아왔다고 자부한다.
『나이가 너무 많아 정치에 욕심이 없는 줄 알고 풀어준 것 같아요
정치문제엔 좀처럼 말문을 열지 않으려다 정치활동해삼에 대한 소감만 털어놓았다.
『30여년간 강단에 섰고 20여년간은 정치에 몸담아 오면서 내 분수대로 살았고, 매사 내분수대로 처리했기 때문에 욕심은 없어요. 지나간 일들이 모두 만족스럽소.』
담담하게 야인생활의 심경을 털어놓는 한솔은 이따금 서울나들이도 하지만 막내아들 집에 며칠 머무르다 그대로 내려오곤 할뿐 아무도 만나지 않는다고 했다.
『프랑스의 사상가「가브리엘·마르셀」의 철학이 내생각과 유사점이 많아요. 그는 서양인으로 유교사상에 심취한 분이죠.「마르셀」의 철학과 한솔의 철학을 가미한 작품도 써보고 싶고,20세기 문학과 종교에 관한 외국서적을 번역하는 것이 내 여생의 사업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솔은 낙향당시 결심했던 대로 『1년에 책한권씩』펴내기 위해 내년부터는 번역에도 손을 델 계획이라고 했다.
부인 한덕희여사(77)와의 사이에 3남1녀로 장남 문호씨(54·경북대문리대철학과교수)와 막내 문조씨(42·영남대법대정치학교수)가 교직에 있고 차남 문희씨(47)는 가톨릭대구교구주교로 있다.
약력▲1906년 1월14일 대구생▲1923년 대구고보(현경북고교)졸▲1930년 일본동경제국대 학독문과졸▲1930년 대구교남학교(현대륜고교)교장▲1945년 경북대교수▲1954년 벨기에 루벤대학문학철학연구(2년)▲1959년 참의원예결위원장▲1962년 6,7대국회의장▲1972년 공화당의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