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미국 이민 가려고 … 이력서에 원전 기밀 쓴 한전기술 연구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0면

국내 원자력발전소가 외부 충격에 얼마나 견딜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수치 같은 기밀 자료가 미국으로 흘러나갔다. 고급 두뇌 스카우트 형식으로 미국 영주권을 얻으려던 한국전력 자회사 직원에 의해서다.

 수원지검 형사4부(부장 정진기)는 5일 원전 관련 기밀을 외부로 유출한 혐의로 한전기술 원자력본부 연구원 Y씨(43)를 재판에 넘겼다고 밝혔다. 검찰이 수사한 내용은 이렇다. Y씨는 지난해 3월 ‘고학력자 독립이민(NIW)’제도를 활용해 미국 영주권을 얻으려고 시도했다. NIW는 개인의 능력이 미국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을 때 영주권을 주는 제도다.

 Y씨는 이민을 가려고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쓰면서 여기에 국내 5개 원전에 대한 ‘구조해석 결과값’들을 적어 넣었다. 원전이 외부 충격에 얼마나 견딜 수 있는지를 분석한 자료다. 또 구조값을 산출하는 과정과 국내에서 추진 중인 원전사업에 대한 내용도 함께 기재했다. 검찰에 따르면 이는 한전 기술이 모두 보안 대상으로 분류한 내용이다. 장문희 한국원자력학회장은 “구조값 자체뿐 아니라 산출 과정까지 공개됐다면 원전에 해를 끼치려는 세력이 활용할 경우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말했다.

 검찰은 “Y씨가 전문가임을 과시하기 위해 기밀 수치를 적어 넣은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Y씨는 “인터넷에 공개된 것 등 보안이 필요하지 않은 내용을 적었다”고 주장했다.

 Y씨가 적은 원전 관련 기밀은 국내 이민 알선업체 L사와 미국 이민국에 전해졌다. 그 밖에 다른 곳으로까지 기밀이 넘어가지는 않은 것으로 검찰은 파악하고 있다. 검찰은 압수수색을 통해 L사에 있던 Y씨의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일단 회수했다. 검찰 측은 “미국 이민국으로 간 기밀 내용도 되찾아야 하지만 일반 이력서 같은 개인정보와 함께 적혀 있는 게 문제”라며 “내용을 분리해 기밀을 회수하는 방안을 찾고 있다”고 했다.

 검찰은 수사에서 한전 기술의 내부 보안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점도 잡아냈다. Y씨는 원전 구조해석 결과값 등이 담긴 파일을 일단 개인 e메일을 통해 빼낸 뒤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쓸 때 활용했다. 회사 업무용이 아닌 개인 메일에 결과값 파일 등을 첨부해 발송하고 외부에서 받아 봤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회사 내부 보안시스템은 작동하지 않았다. 검찰은 “보안시스템이 제대로 됐다면 파일을 첨부해 외부로 발송하려는 시도 자체가 막혔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검찰은 한전 기술의 보안 체계가 이처럼 허술했던 데 대해서도 조사할 계획이다. 

수원=임명수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