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문화원사건의 결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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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전두환 대통령은 부산 미 문화원방화사건으로 대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된 김현장과 문궁식에 대해 무기징역으로 특별 감형하는 조치를 내렸다.
이 같은 조치는 헌법 제54조와 사면법 규정에 따라 대통령의 점정적 결단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우리는 먼저 정부의 감형조치를 평가하면서 이 조치가 한때나마 물의를 일으키게 했던 한-미 우호관계와 종교계에 미친 파문이 가라앉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법치국가에서 방화나 이로 인한 살인은 어떤 명분을 붙이건 정당화할 성질의 일이 아니다. 현실이 아무리 불만스러워도 그것을 타개하는 방법이 폭력일 수는 없다.
건전한 사회기강의 확립을 위해서나 유가족의 애통한 심정에 비추어 엄벌에 처하는 것이 마땅하나 관용과 아량으로 국민적 화합을 이룩하려는 전대통령의 배려 및 당초 이들이 자수했던 정상을 참작, 취해진 조치라고 정부는 설명하고 있다.
돌이켜 보면 부산 미 문화원방화사건은 전통적 한-미 우호관계에 찬물을 끼얹을 가능성이 있었을 뿐 아니라 한 신부의 구속으로 우리사회엔 최초로 실정법과 교회법의 마찰을 빚었다는 점에서 실로 충격적이었다.
사건을 저지른 동기는 재판과정을 통해 「반미」 내지는 「한-미 이간」임이 명백해졌다. 생각해 보면 이처럼 어처구니없는 동기도 없다. 『양키 고 홈』이란 구호가 나오지 않는 유일한 나라였다는게 그 동안 한-미 두 나라의 두터운 우호관계를 잘 증명하고 있다.
다른 분야는 제쳐두고라도 안보와 경제분야에서 맺어진 미국과의 유대는 일부망상에 젖은 사람들의 책동으로 벌어질 만큼 얄팍한 것이 아님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 아닌가.
일심에서 최종심인 대법원에 이르기까지 법원의 판결이 중형으로 일관한 것은 법의 존엄함을 일깨워준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특히 최기직 신부에 대한 형의 확정은 비록 범인을 은닉해 준 그의 행위가 성직자로서 할 수 있는 일이기는 하지만 교회법이 헌정법에 우선할 수 없다는 확고한 판례를 남긴 셈이 된다.
법의 집행은 단호하되 그 법을 운영하는 정치는 관용과 신축성을 보일수록 좋은 법이다. 제5공화국은 출범 이래 구시대의 상처를 아물게하기 위한 조치를 꾸준히 취해왔다.
법적으로 사형이 확정되었던 김대중씨에 대해 감형조치를 한데 이어 형 집행정지로 출국을 시킨 일도 그렇지만, 김대중사건 관련자 및 광주사태 관련자 모두를 풀어준 조치는 문자 그대로 국민화합을 이룩하기 위한 정치적 배려에 따른 것이라 할 수 있다.
정치가 관용과 아량을 베풀면 국민들의 마음도 그만큼 훈훈해지고 화합의 바탕 또한 튼튼해지는 것이다. 국민 모두가 김과 문에 대한 감형조치를 평가하는 까닭은 그런데 있다.
미 문화원방화사건은 주지하다시피 우발적으로 일어난 것은 아니다. 한마디로 그것은 10·26% 이후 새 정부 출범에 이르기까지 혼란기에 일어났던 「갈등」의 소산이었다. 어떻게 보면 이 사건은 구시대의 반체제운동에서 비롯된 것이며 광주사태와도 전혀 무관하다고 할 수 없는 사건이었다.
그러기에 방화사건의 범인에 대해 베푼 은전은 함축하는 바가 많다고 생각되는 것이다.
미 문화원방화사건 및 같은 날 확정판결이 난 이·장 사건은 하루 빨리 잊고싶은 악몽과 같은 사건이다. 사법부의 처결이 신속했던 것과 함께 감형조치가 대법원판결이 난 l주일 후에 취해진 것은 불행했던 사건을 하루 속히 마무리하려는 배려라고 할 수 있다.
거듭 정부가 내린 조치를 평가하면서 이번 조치가 국민의 일반적인 상식에 어긋나는 극단적인 사건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는 계기이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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